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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신문은 나꼼수의 ‘특종’ 행진을 지켜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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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글을 보고 몇 분이 연락을 주셨다. “(모아놓은 것도 없을 텐데) 그 나이에 그만두면 뭐 할 거냐”고 걱정해주신 분도 있었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해주신 분도 있었다. 남의 입을 빌리긴 했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시간을 허비하기엔 남은 인생이 길지 않다”고 제목을 달았으니 오해를 살 만도 하다. 실은 세상이 변해도 신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직업적 신념을 말하고 싶었다. 엉뚱한 반응을 촉발한 것은 오롯이 모자란 문장력 탓이다.

 신문기자가 신문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정치인이 정치의 위기를 말하는 것만큼 부질없고 염치없는 일이다. 제 얼굴에 침 뱉기다. 위기의 원인을 따져보면 외부의 환경적 요인 못지않게 제 역할과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내적 요인이 크다. 불편부당(不偏不黨), 정론직필(正論直筆)로 독자의 신뢰를 얻었더라면 아무리 미디어 환경이 천지개벽해도 신문이 발길에 차이는 깡통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낯 뜨거운 고백이지만,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한 것은 여당 국회의원의 비서였다는 경찰의 충격적 발표를 접하고 우선 떠오른 건 ‘나꼼수’였다. 10·26 재·보선 당일 아침 선관위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신문은 내막을 파고들지 않았다. 막연히 북한의 소행 가능성을 언급했을 뿐이다. 반면 나꼼수는 ‘합리적 의심’을 근거로 투표율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계획적 범행 가능성을 물고늘어졌다. 결국 경찰 수사로 나꼼수가 제기한 ‘음모론’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명박(MB)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을 처음 터뜨린 것도 나꼼수였다. 사람들이 신문을 외면하고, ‘나꼼수 4인방’에 열광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프랑스의 소통과학 전문가인 도미니크 볼통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누구나 기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신문기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말한다.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남든가 아니면 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최대한의 객관성과 정직성으로 정보의 자유를 지키는 문지기가 되는 길이다.

 “언론 자유의 가장 큰 적(敵)은 독자”라고 프랑스의 20세기 지성(知性) 레몽 아롱은 말했다. 대중에 영합하는 저널리즘의 위험을 경고한 역설(逆說)이다. 1인 미디어 시대를 맞아 그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볼통은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기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정보와 뉴스에 권위를 부여하는 제도 언론의 정당성 때문이며, 그 정당성은 신뢰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독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 그것이 신문이 살 길이다. 기자들이여, 각성하자. 언제까지 나꼼수의 ‘특종’ 행진을 지켜만 볼 것인가. 이러다 밥그릇 다 날아간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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