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엔진은 큰 게 좋은 거야, 힘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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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는 국제 원조회의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사흘간의 막을 내렸습니다.

 명성대로 수많은 VVIP가 참석했는데 j가 인터뷰한 라니아 요르단 왕비도 그중 한 명이었죠. 그녀는 자기 의견이 뚜렷한 아주 딱 부러지는 여성이었습니다. ‘교육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교육에 애정이 많기로 유명한데, 제게도 한국의 교육에 대해 물은 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그녀는 너무 예뻤습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같은 여자가 봐도 빛이 막 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부산에 내려간 박종근 선배와 이도은 선배에게 내내 이 얘길 했죠. “정말 아름다우시더라고요. 하이힐을 신었다 해도 1m80㎝는 돼 보이는 키에 얼굴은 어찌나 작은지. 저는 완전 그 반대인데 말이죠. 같은 여자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요.” 가만히 듣던 박 선배가 제가 좀 안됐는지 “엔진(머리)은 큰 게 좋은 거야”라고 말해줍니다. “아니지, 그러려면 키도 커야죠!” 뭘 어쩌라고 엄한 데다 짜증을 내는 후배를 선배는 또 받아줍니다. “아냐, 작은 차에 큰 엔진이 있는 게 더 대단한 거지! 안 그래?” 그제야 선배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기분이 좋아지려고 했습니다. 나직이 그 뒷말만 안 하셨어도. “뭐…근데 엔진이 보닛 밖으로 삐져나오면 좀 그렇긴 하겠다….” <이소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장충동 길은 차로 꽉 막혔죠. 인터뷰 약속은 오후 3시30분. 결국 늦고 말았죠.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정현경 교수를 경동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했죠. 사진기자 박종근 선배는 부산에서 라니아 요르단 왕비 취재를 마치자마자 KTX를 타고 상경하고 있었습니다. 30분…1시간…1시간30분. 인터뷰를 하면서 시간이 자꾸 흘렀죠. 초겨울 저녁 해가 툭툭 떨어졌습니다. 인터뷰 간간이 창밖을 봤죠. 어두우면 사진이 안 나올 텐데….

 박 선배는 약간 어둑해서야 교회에 도착했죠. 밖으로 나갔습니다. 비도 오고, 날은 어둡고, 교회 바깥은 그림이 별로고. 아무리 봐도 괜찮은 공간이 안 보였죠. 박 선배는 교회 안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더니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교수님, 저 위로 올라가 보실래요?” 교회 벽에 붙은 좁은 공간이 보였습니다. 벽에는 말라 비틀어진 담쟁이 덩굴이 붙어 있었고요. 저기서 무슨 사진을 찍지? 정 교수는 철제 사다리를 딛고 힘겹게 올라갔습니다. 구두를 신은 정 교수는 좁다란 공간에 아슬아슬하게 섰죠. ‘찰칵! 찰칵! 찰칵!’

 잠시 후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본 저와 정 교수는 “우와!” 하고 감탄사를 쏟았습니다. 이런 공간에서, 저렇게 날 선 사진을 뽑다니. 정 교수는 “사진에 ‘잇(It)’이 있다”고 평했습니다. ‘잇(It)’은 코어(핵심)가 되는 그 무엇이죠. 정 교수는 한마디 더했죠. “무슨 일이든 ‘잇(It)’이 있어야죠. 우리의 삶에도 ‘잇(It)’이 있어야 하듯이.” 돌아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박 선배 눈에 보였던 그 ‘잇(It)’이 왜 내겐 안 보였지? 그제야 알겠더군요. ‘잇(It)’은 늘 있고, 내가 그걸 놓칠 뿐임을.

 아 참! 신고합니다. 문화부에서 종교 담당을 하다가 j섹션으로 옮겼습니다. 앞으로 인터뷰이의 눈에서, 그들의 가슴에서 ‘잇(It)’을 찾겠습니다. <백성호>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76호

팀장 : 이은주
취재 : 백성호 · 이도은 · 이소아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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