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윌리엄스 쉬프트

중앙일보

입력

현대야구는 '데이터(data)
야구'이다.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낱낱이 기록으로 남으며, 이 기록은 다시 철저히 분석되어 감독과 선수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서로간에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준 상태에서 정정당당한 승부가 이뤄지는 것이다.

토니 그윈(샌디에이고)
과 같이 정평이 난 '스프레이 히터(spray hitter)
'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타자들은 자신만의 '주(主)
타구방향'을 갖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타자들은 좌익수 쪽, 좌타자들은 우익수 쪽으로 타구를 많이 날리게 된다.

특히 스티브 핀리(애리조나)
, 라울 몬데시(토론토)
같이 철저하게 당겨치는 타자일 수록 타구의 방향은 뻔해진다.

요즘 야구팬이라면 타자에 따라 수비의 위치가 바뀐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야구게임에조차 있는 이 '수비 포메이션'을 전혀 모른 채 야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

'최후의 4할타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당겨치기'의 대명사로도 유명했다. 좌타자였던 그는 무려 타구의 85% 이상을 우익수 쪽으로 날렸다. 펜웨이 파크의 우측 펜스가 7m 당겨진 것도 바로 윌리엄스 덕분이었다.

루 부드루(Lou Boudreau)
.

2루수 레이 맥과 함께 1940년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최강 키스톤'을 이끌었던 루 부드루는 .327의 타율로 1944년 아메리칸 리그의 타격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부드루를 유명하게 했던 것은 그가 메이저리그 최연소 감독이었다는 사실이다. 부드르는 로저 패킨포 감독이 사임안 1942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감독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 이후 1950년까지 부드루는 인디언스의 감독이자 유격수로 활약했다.

테드 윌리엄스와 루 부드루, 바로 이 둘이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제 7편 '테드 윌리엄스의 마지막 4할'에서도 소개한 바 대로 윌리엄스는 자기 주장이라면 절대로 굽히지 않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상대투수가 누구던, 코스가 어땠건 간에 당겨치기는 변함이 없었고, 그의 타구가 어느 쪽으로 날라가리란 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던 터였다.

1946년 7월 14일. 펜웨이 파크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간의 더블헤더가 벌어졌다.

1차전에서 인디언스의 감독 겸 선수 루 부드루는 4개의 2루타와 홈런 1개를 기록하며 분전을 했으나 홈런 3방에 8타점을 올린 윌리엄스를 당해낼 수 없었다.

2차전 첫타석에 선 윌리엄스가 싹슬이 2루타를 치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부드루 감독은 두번째 타석부터 윌리엄스를 상대로 기상천외한 수비 포메이션을 구축한다.

부드루 감독이 택한 전술은 다음과 같았다. 그리고 당시 펜웨이 파크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1루수와 우익수는 우익선상에 바짝 붙었다. 유격수는 1-2루간, 3루수는 2루 베이스 뒤, 2루수는 얕은 우측 외야, 중견수는 우중간에 위치했다. 수비위치를 바꾸지 않은 포지션은 좌익수 뿐이었다.

좌익수가 수비위치를 옮기지 않았던 것은 만약의 경우 허허벌판이 될 좌측외야를 책임져야했기 때문.

그러나 부르두 감독이 원했던, 혹은 보스턴 팬들이 원했던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인디언스 투수 찰스 엠브리가 윌리엄스를 두려워한 나머지 승부를 계속 피했기 때문이다. 결국 윌리엄스는 두개의 고의사구성 볼넷과 평범한 땅볼 하나로 경기를 마감했다.

그러나 불발로 끝난 루 부드루의 새로운 시도는 다른 팀 감독들에게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왜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리고 부드루가 했던 만큼의 극단적인 수비이동은 아니지만 테드 윌리엄스를 만날때마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수비 포메이션을 구축하게 된다.

이제 다급해져야 할 쪽은 테드 윌리엄스. 그러나 윌리엄스가 누구인가, 고집으로 똘똘뭉쳐 있던 윌리엄스는 주위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타격 스타일을 지켰다. 그리고 시즌 막판에 벌어진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좌익수의 키를 넘어가는 그라운드 홈런(inside the park homerun)
을 뽑아내며 부드루 감독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

이 홈런은 윌리엄스가 기록한 521개의 홈런 중 유일한 그라운드 홈런이었으며, 1946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짓는 한 방이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 여부를 떠나 루 부드루의 극단적인 수비이동은 현대야구의 수비력을 한단계 더 향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며, 훗날 '윌리엄스 쉬프트' 또는 '루 부드루 쉬프트'로 불리게 됐다.

Joins.com 김형준 기자<generlst@joins.com>

◆ 메이저리그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조인스 스포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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