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정점 언제일까] 전망 논쟁과 근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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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정점은 언제일까. 외환위기에서 겨우 벗어나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계속된 경기 상승국면의 끝은 언제일까. 최근 실물경기 흐름이 미묘한 변화를 보이면서 정부와 국책.민간 연구기관들간에 경기논쟁이 조용히 전개되고 있다.

경기가 정점을 지났느냐는 논쟁은 지난 13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면서 재연됐다.이날 김준일 KDI 연구위원은 “경기정점은 하반기가 아니라 지난 1분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그동안 “경기 정점 걱정은 내년 가서나 하자”던 정부 입장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경기가 변화하는 시점을 파악하는 것은 거시정책상 매우 중요하다.정점에 접근했다고 판단하면 경기가 부드럽게 하강할 수 있도록 연(軟)착륙 정책을 펴야 경제가 비틀거리지 않고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점을 지나쳤다”=金연구위원은 1분기 경기정점론의 근거로 ▶4월의 산업생산 증가율이 1999년 2월 이후 가장 낮았던 데다 5월도 실제로는 4월 증가율보다 더 하락하는 등 산업생산이 크게 둔화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도소매판매·내구소비재출하 등 소비동향지표들과 4월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점도 들고 있다.

그러나 金연구위원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 전문가들이 더 많은 편이다. 1분기중 국내총생산 증가율이 지난해 1분기 대비 12.8%로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점은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시점에서 찾아오지, 높아지는 상황에서 오지는 않는다”라고 반박한다.

◇하반기중 경기 정점 온다=조홍래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경기 선행지수로 보면 하반기중 경기가 정점을 기록하고 하강국면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0년대 이후 선행지수의 평균적인 선행 시차는 12개월 정도인데,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 연속 선행지수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중에는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것이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도 “7∼9월쯤 경기가 정점을 기록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경기수준을 나타내는 동행지수가 최근 몇달새 정체되고 있는 것도 경기정점에 근접했음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내년 이후”=정부 관계자들은 경기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하반기중 경기가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권오봉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경기 정점이 조만간 올 것 같지 않다”고 말했으며,한성택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조정 국면을 거친 뒤 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들은 아직 우리 경제는 충분히 상승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근거로는 ▶과거 경기 정점때의 제조업 가동율은 평균 82∼83%대였지만 지금은 79%대여서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고(權과장)▶수출과 설비투자가 여전히 호조인데다 건설경기도 점차 회복될 조짐(韓국장) 등을 꼽고 있다.

이들은 또 10개월 동안 계속 하락해온 선행지수 움직임에도 해석을 달리한다.

權과장은 “70년대 중반 석유위기 당시에도 푹 꺼졌던 경기가 반등한 후 오랫동안 선행지수가 떨어졌지만 경기는 다시 반등했었다”고 말한다.

과거의 경기순환과 구조적으로 다른 면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박사는 정보통신(IT)산업의 발달등 신경제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동안 재고 변동이 경기순환을 낳았지만 요즘은 IT의 발달로 재고 변동이 거의 없어 과거 잣대로 경기순환을 바라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도 불안 요인이 있음을 인정한다.내년에도 상승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한 전문가는 “정부 정책 신뢰도가 개선되지 않고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노사 분규등 사회적 불안요인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경기는 하강국면으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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