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한국사회 변화시켰다"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사용 보편화로 한국사회가 크게 변모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1면 등 2개면에 걸친 서울발 기사에서 아시아 제2의 경제국인 한국에서의 인터넷 열기는 타국의 추종을 불허하며 일부 영역에서는 오히려 미국을 능가하고 경쟁국인 일본을 무색케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삼성그룹에서 9년간 근무한 고모(27) 씨는 몇개월전 어느 닷컴 창업사로 일자리를 옮겼다. 그 결과 그의 미래는 전보다 불안해지고 사회적 지위도 약화됐으며 가족들의 경제적 혜택은 줄었다. 그러나 그는 스톡옵션과 함께 더 많은 책임을 부여받았으며 회사가 성공하면 부를 움켜쥘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고씨는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며 "나는 좀더 모험적인 것을 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사람과 돈, 시장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신경제로 급속히 몰리면서 한국의 재벌위주 경제가 변모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와 부의 왕성한 창출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변화에 더딘 일본을 무색케 할 정도다.

서울에서 변화의 조짐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게시판, 지하철, 가로둥기둥에는 창업사 광고들로 채워져 있다. 기존 기업들은 직원들이 닷컴기업으로 이직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라인경매, 주식거래, 뱅킹과 게임소프트웨어업체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 기관들은 온라인망으로 연결되고 벤처기업에 친화적인 규정을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외국의 벤처캐피털 회사들은 서울에 뭉칫돈을 투자하고 있으며 한국의 창업사들은 중국과 대만(臺灣) , 홍콩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의 정보통신 투자액은 지난해 중국보다 많았으며 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추월하기 직전이다.

인터넷 사용자는 지난 6개월간 50%가 급증, 5월말 현재 1천530만명에 달하며 연간 등록 도메인 수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다. 온라인 주식거래는 전체물량의 56% 이상(미국 40%) 으로 세계 최고다.

한국의 급속한 인터넷 확산 이유중 하나는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공간인 `PC방''과 같은 한국 고유의 새로운 제도 때문인지 모른다. 98년 100개에 불과하던 PC방은 지금 전국에 1만5천개이상이 산재해 있다. 시간당 1달러정도만 지불하면 고속접속이 가능하다.

한국 정부도 인터넷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관공서가 중심이 돼 200만명의 주부들에게 웹사용방법을 가르치고 내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인터넷교육이 의무화된다. 유저와 비유저로 사회가 이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196개 소도시의 고속접속 확대 등 몇몇 인터넷 핵심사업 추진을 위해 8천400만달러의 예산을 마련했으며 세금감면을 통해 중.대도시 민간투자를 유치하고 섬과 산간마을의 우체국 등에 인터넷 광장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인터넷은 한국인들의 의사소통, 사회화, 정치캠페인, 사업 방법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때 시민단체가 비리혐의 국회의원 후보 86명의 명단을 공개, 56명이 낙선했으며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의 10대가 쇼핑몰에서 만나는 듯 PC방을 교제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기존 기업들은 인터넷과 세계화에 대처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대우텔레콤 등은 올해 연구인력의 8-25%를 창업사에 빼앗겼다. 이들 회사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센티브를 강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의 창조적 열기는 일본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일본에서는 철처한 관료주의, 문화적 편견, 혁신사업 초기비용 과다 등으로 인터넷 시대로의 변화가 느린 편이다.

모리 요시로(森喜郞) 일본총리가 지난 5월 처음으로 전자메일을 보낸 점이나 PC앞에 한번도 앉아본 적이 없다는 인사를 우정상에 임명한 것은 일본의 인터넷 현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반면 한국 정부는 관공서의 78%가 온라인망을 갖췄으며 컴퓨터만 있으면 모든병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젊은이들에게 인터넷 언어로 영어를 배우도록 장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빠른 인터넷 수용 뒤에는 구조적 충격, 문화, 요행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즉 98년 통화위기로 많은 전통적 가치관들이 흔들렸고 재벌은 새로운 경쟁자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했으며 정부와 기업 모두 구조적 개혁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됐다는 것이다.

또 한국인들의 조급성과 요행심리도 속도와 위험부담이 요구되는 정보화시대와 잘 맞아떨어졌다. 한국에서는 매월 약 500개의 닷컴기업이 생겨나 현재 6천500개사에 이르고 있는데 이 수치는 대만과 이스라엘을 앞선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이런 초반 인터넷 열풍이 모든 야심찬 계획의 실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동성은 중대한 결정을 그르칠 수 있으며 결정권이 민간부문보다는 정부쪽에 더 기울져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