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얼굴] 포르투갈의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Eusebi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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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막을 내린 제11회 유럽선수권대회(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이 전통의 강호 잉글랜드와 독일을 연파하면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 맞붙은 터키도 포르투갈의 상대는 아니었다. 루이스 피고를 정점으로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인 포르투갈은 4강에서 프랑스에게 지면서 아쉽게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유로 2000 내내 돌풍을 일으킨 포르투갈 대표팀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포르투갈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 에우제비오였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9골을 성공시키며 득점왕에 올랐던 에우제비오는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포르투갈을 3위까지 이끌었다. 에우제비오는 비교적 한국 선수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다. 한국을 한번 다녀간 경험이 있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 북한과의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은 그의 이름을 한국 사람들 머리 속에 각인 시켰다.

66년 월드컵 8강전 북한과 포르투갈의 경기는 최고의 돌풍을 일으킨 팀간의 대결이었다. 두 팀 모두 월드컵 첫 출전에 8강 진출. 당연히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경기 초반 약체로 평가되던 북한이 먼저 세 골을 뽑아내며 앞서갔다. 그러나 이때부터 검은 표범은 그라운드를 누비기 시작했다. 에우제비오는 순식간에 네 골을 뽑아내며 5-3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기적과 같은 역전승과 함께 에우제비오는 세계 축구계에 그의 이름을 날렸다. 66년 월드컵을 통해 아프리카 모잠비크 출신인 에우제비오는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에 이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등극했다. 남미나 유럽이 아닌 제3대륙 출신으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에우제비오는 1942년 1월 25일 당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에서 태어났다. 에우제비오란 이름으로 통칭되지만 원래 그의 이름은 에부제비오 다 실바 페레이라(Eusebio da Silva Ferreira). 에우제비오는 10살이 되던 해에 모잠비크의 스포팅 클럽 소년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당시 모잠비크의 축구클럽은 벤피카, 스포팅, 포르토 등 유명한 포르투갈 클럽들이 운영하는 유소년 클럽이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조기에 발굴, 가능성이 있으면 본국으로 진출했다. 에우제비오가 입단한 스포팅 소년 클럽 역시 포르투갈 본국의 1부 리그 클럽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소년 클럽 시절부터 현란한 드리블과 대포알 같은 슈팅 능력을 보인 에우제비오는 1961년 본국의 1부 리그에 진출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에우제비오가 1부 리그에 둥지를 튼 팀은 그를 키워준 스포팅이 아니라 전통의 명문 벤피카. 그의 재능을 탐내던 벤피카가 스포팅에 앞서 에우제비오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 해 가을 바로 1부 리그에 데뷔한 에우제비오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포르투갈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꿈꾸던 에우제비오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버티고 있었다. 그 산은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는 브라질의 펠레. 58년과 62년 월드컵 2년 연속 우승의 주역인 펠레는 당시 에우제비오가 다가가기조차 힘든 존재였다.

그러나 펠레와 에부제비오의 대결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1961년 말 에우제비오의 벤피카는 파리에서 펠레가 이끄는 산토스팀과 경기를 벌였다. 3-0으로 뒤지던 후반전에 교체되어 그라운드에 투입된 에우제비오는 순식간에 세 골을 뽑아내며 펠레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66년 월드컵에서 에우제비오와 펠레는 다시 맞붙었다. 이번에는 클럽이 아니라 국가대표 자격으로. C조 조별 리그 마지막에서 맞붙은 양팀의 경기는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포르투갈이 3-1로 브라질을 제압했다. 이 경기에서 에우제비오는 전후반 각각 1골씩 2골을 뽑아내며 팀 승리를 이끌었고 펠레는 무득점으로 다시 한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8강조차 오르지 못하는 치욕을 당했다.

펠레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새로운 축구황제로 등극한 에우제비오는 포르투갈 국가대표로 A매치에 총 46회 출전해 38골을 기록했다. 벤피카에서는 61년 계약이후 13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7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했다.

에우제비오는 현역에서 은퇴 후 TV 해설가와 프로팀의 코치로 활동했다. 에우제비오의 뛰어난 활약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의 소속팀이었던 벤피카는 92년 에스타디오 다 루즈(Estadio da Luz) 전용구장 앞에 거대한 동상을 세워 그의 업적을 기렸다. 선수로 활동하면서 총 624경기에서 405골을 기록한 특급 골게터로 활약한 에우제비오는 여전히 포르투갈 최고의 축구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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