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에서 활력 찾아요 도자기 굽는 여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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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빚은 도자기로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거나, 집안 곳곳을 꾸며 놓기도 한다는 도예 수강생들. 왼쪽부터 윤덕희, 정미숙, 문원진씨

방송인 김혜영씨는 도자기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로 유명하다. 주는 이는 만드는 내내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정성을 가득 담고, 받는 이는 그 노력을 알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다가오는 연말, 특별한 사람에게 색다른 선물을 계획 중이라면 직접 만든 도자기는 어떨까? 집에서나 공방에서나 손에 흙이 마를 날 없는 도예 공방 여성들을 만나봤다.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일산 도예공방 ‘토화랑(덕양구 행신동)’. 지하로 향하는 계단 입구부터 특유의 흙 냄새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물레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다.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눈앞의 흙 말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치다. 각자 널찍이 떨어져 앉아 자신의 작품에만 집중한다. 물레를 돌리는 사람, 조각칼로 민화를 그리는 사람, 붓을 들고 도자기에 색을 입히는 사람으로 작업 방식이 모두 제각각이다. 타인과 속도를 맞출 필요 없고 온전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작업할 수 있어 더욱 말이 필요 없다.

 취미거리를 찾던 주부 문원진(42·은평구 진관동)씨에겐 한가지 조건이 있었다. ‘내 방에서 나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활동이 그에겐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대화거리를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는 점, 되레 타인과 어울리는 시간이 작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예는 문씨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세상만사 귀찮은 사람에게 좋아요. 저처럼 활동적인 일에 부담을 느끼신다면 도예를 적극 추천합니다”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그릇 안에 정성과 꿈을 가득히

 “도자기를 받는 사람은, 그만큼 상대방에게 소중하다는 의미에요.”

 도예를 시작한지 10년째에 접어들었다는 정미숙(52·덕양구 화정동)씨는 타인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물하는 횟수가 오히려 줄었다. 초창기에는 만드는 작품마다 주위에 선물하던 그였다. 하지만 만드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도자기에 애착이 생겼고, 내 노력을 정말 특별하게 생각해줄 사람에게만 선물하자고 생각이 바뀐 것이다. “시간과 정성을 쏟아 도자기를 만들고 또 그걸 선물해도, 받는 사람이 집안 식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대로 방치해둘 땐 정말 속상하더라구요.”

 도자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도예가 취미라고 하니 만들어놓은 많은 작품 중 한 개를 선물하겠지’라고 가볍게 여길 뿐이다. 하지만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 하루 종일 흙을 손에서 놓지 않고 물레를 오래 돌려 손목이 시큰거려도, 불에 굽고 나왔을 때의 모습이 예상에 못 미칠 경우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나올까’ 항상 연구하며 만들기 때문에 정말 특별한 사람에게만 선물하겠다”는 정씨는 “도자기 선물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윤덕희씨가 작업 중인 나팔꽃 커피잔. 행여 색이 엇나갈까 조심 또 조심이다.

 주부 윤덕희(55·양천구 목동)씨가 작업 중인 커피잔에는 활짝 핀 나팔꽃이 그려져 있다. 윤씨는 그 위에 초록색, 보라색의 물감을 열심히 입히던 중이었다. “내가 야생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작품에 종종 들꽃을 그려 넣는데, 그게 또 다른 그릇과는 차별화가 된다”고 말한다. 시중에서 파는 컵 중에 나팔꽃이 그려진 컵은 거의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윤씨는 선물을 할 때도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무늬를 그려 넣는다. 장미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장미꽃 접시 하나를 선물했고, 매우 기뻐하는 그의 반응에 흥이나 아예 5개 세트를 만들어 추가로 선물하기도 했다.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조그만 카페를 차려놓고 노년을 여유롭게 보내는 것이 윤씨의 꿈이다. 예전부터 미리 구상해둔 카페의 테마는 ‘야생화와 도자기가 어우러진 쉼터’. “가게에 들린 손님들이 정원에 핀 들꽃을 감상하면서 한 켠에서 도예 체험을 하는 거에요. 한적한 동네에서 흙을 만지고 또 그 흙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시켜 집으로 돌아간다면 손님들도 기뻐하지 않을까요?”

<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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