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기요금 현실화가 블랙아웃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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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겨울철 전력대란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수출 호조로 전체 전력 판매량의 6할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 소비가 전년 대비 9% 이상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기상청은 올겨울에도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내려오는 이상 한파(異常寒波)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겨울에는 역대 가장 긴 39일간 한파주의보가 내려져 난방용 전력 소비가 급증했다. 이런 추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이번 겨울에 대규모 정전 사태(블랙아웃)를 피할 길이 없다. 무제한 송전이 시작된 1960년대 중반 이후 처음으로 전력 수급(需給)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전력 부족에 숨통을 트려면 현재 건설 중인 발전소가 여럿 완공되는 201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와 한국전력은 경제 성장 예측 모델에 따라 장기적 차원에서 발전 설비를 확충해 왔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된 전기요금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과다 수요가 발생한 것이 문제다. 산업 현장에선 값싼 전기를 흥청망청 낭비했고, 전국적으로 기름보일러를 뜯어내고 전기난방 열풍이 불었다. 이제 우리는 현재의 발전 설비로 세 번의 겨울과 두 번의 여름을 힘겹게 버텨내야 한다.

 최근 한전 이사회가 10%대 전기요금 인상안을 단독 의결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정부는 물가 부담 때문에 난색을 표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다. 전력대란을 막으려면 장기적으로는 원자력 발전소 증설, 중기적으론 스마트그리드 보급, 단기적으로는 등유로 전기난방을 대체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정유사들의 수출용 기름부터 긴급히 내수용으로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전력대란은 몇몇 책임자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전 국민의 내복 입기 운동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한겨울의 블랙아웃, 아니 순환정전(循環停電)조차 끔찍한 재앙이다. 양식장의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비닐하우스 농작물이 짧은 시간 안에 냉해를 입는다. 난방이 잘 안 되는 서민들은 추위에 떨고, 응급환자의 수술이 중단돼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적어도 3년간은 강력한 예방책이 필요하다. 단기간 내에 전력 공급을 늘릴 수 없는 만큼 수요를 줄이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가장 세련되고 근본적인 수요 감축은 시장원리(市場原理) 도입이다. 우선 원가 이하인 산업용 전력요금부터 올리고, 시간대별로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도록 요금체계도 손질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남 탓할 때가 아니다. “이미 전기난방으로 바꾼 서민들이 전기요금 인상에 피해를 본다”며 입씨름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정부와 한전이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득해야 한다. 전기는 매우 사치스러운 에너지다. 등유를 이용한 직접난방의 효율은 전력생산 효율의 3배 이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오래 전기요금 현실화를 외면해 에너지원(源)별 가격을 왜곡시켰고, 결과적으로 전력대란 위기를 자초(自招)했다.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바로잡아 겨울철 전력대란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