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원순 시장의 재건축 입장부터 분명히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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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시의 재건축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박원순 쇼크’가 서울 재건축시장을 강타하자 다시 말을 바꿨다. 여기에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서울시가 반(反)서민 정책을 취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했다. 박 시장 취임 뒤 서울 재건축시장이 패닉에 빠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개포지역 정비구역지정안을 무더기로 보류했다. 여기에 “임대주택과 소형주택을 늘리겠다”는 박 시장의 재건축 철학이 전해지면서 재건축 아파트는 수천만원씩 떨어졌다.

 뒤늦게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재건축의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은 아니다”고 부인한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격이다. “앞으로 재건축은 공공성에 중점을 두면서 임대주택을 단지 내에 적절히 배치하고 녹지와 주민 편의시설도 확보하겠다”는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울시와 박 시장만 모르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재건축의 경제성보다 공공성에 치중하겠다는 것이다. 재건축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재건축을 활성화하고 주민 부담 완화에 노력하겠다”고 해명해도 누가 곧이 믿겠는가. 사족(蛇足)이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침체한 부동산시장에 결과적으로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남 탓하는 것은 꼴사납다. 권 장관은 “서울시가 공공성을 앞세워 부동산시장을 침체시켰다”고 비난하기 전에, 그 자신이 나라 전체의 부동산시장을 안정되게 관리해야 할 책임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서울시가 “주택시장 침체는 정부의 실패인데,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우기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재건축은 부동산시장의 체온계다.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재건축이 급랭하면 당연히 서울시가 책임을 져야 한다.

 박 시장이 직접 나서 재건축에 대한 분명한 입장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부동산시장은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을 관철시키는 실험대상이 될 수 없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부동산시장의 붕괴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災殃)을 초래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주택시장을 안정되게 관리해야 할 두 축인 국토부와 서울시가 정치적 신경전을 벌이는 것부터 보통 불길한 조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