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야구장 사람들 6. - 장내 아나운서

중앙일보

입력

9회말 3-2로 홈팀이 지고 있는 상황. 2사 만루에서 대타가 등장한다. 선수와 멀리 있는 관중들은 그 선수가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당연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귀를 기울인다. 이어 아나운서의 선수소개를 듣고 관중들은 함성을 지른다.

두산 베어스의 장내 아나운서 심은실 씨(25). 올해로 장내 아나운서 3년째를 맡고 있는 심씨에 대해서 지면을 통해 소개해볼까 한다.

▶ 구단직원에서 장내 아나운서로…

심씨의 명함에는 소속이 ‘운영팀’으로 되어있다. 전문 아나운서가 아니라 1,2군 매니저의 서포터역할을 주업무로 하며 두산의 홈 경기에서만 마이크를 잡는다.

심씨가 장내 아나운서를 맡게 된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직장선배로부터 공석으로 있던 장내 아나운서로 일해보라는 흥미있는 제안이 들어왔다.

두산 베어스의 장내 아나운서는 전통적으로 두산 베어스의 여직원이 맡아왔었다. 평소 야구를 좋아하고 구단의 다른 여직원들보다 야구를 많이 알고 있었던 심씨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제의을 받았고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98년에 열린 삼성과의 잠실 개막전. 그 당시 심씨의 심정은 라디오 생방송으로 첫 방송하는 디스크자키와 같았다. 다른 것이라면 전국의 청취자들에 대한 것이 아닌 잠실의 3만 관중에 대한 것이었다. 긴장되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국어책을 읽듯 애국가가 반주되니 관중들로 하여금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멘트가 그녀의 첫 작품이었다. 막상 하고 나니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심씨는 자신감을 가지고 마이크 앞에 다가섰다.

▶ 힘들어도 나와야되요…

“몸이 아파도 자리를 지키며 방송을 해야해요”. 심씨가 장내 아나운서에 대해서 힘들어하는 점이다. 아나운서는 철저한 몸 관리가 필수적이다. 두산이 홈 경기를 갖는 3연전의 3일 동안은 퇴근시간도 늦다. 3연전이 주말에 열리기라도 하면 개인적인 스케줄은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행복하다. 자신의 목소리에 관중들이 귀 기울여 듣고 선수들도 자신이 불러야 나온다는 데에 자신이 운동장에서 주연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이 일이 흥미롭다고 한다.

▶ 박철순 선수 은퇴경기 가장 기억에 남아…

3년 동안 장내 아나운서를 하면서 기억에 남을만한 일도 많았다.

자신이 우상으로 삼았던 박철순 선수의 은퇴경기 때 장내 아나운서로 은퇴식을 진행했을 때는 가슴 한구석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잠실구장의 조명을 모두 끈 채로 관중들이 라이타를 켜고 한마음으로 박철순을 연호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며 그때의 일을 회상한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두산 베어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때라고 한다. 비록 그녀가 장내 아나운서로 있던 2년 동안은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플레이오프에 연속으로 올라 가을의 축제를 즐길 때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 에러를 안타로…

3년 동안 진행하면서 가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 중에 에러를 안타로 잘못 방송했던 것이 가장 당황스러운 일로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SK의 김선섭 선수는 발음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심씨는 최근 미들맨으로서 떠오르고 있는 신예 구자운 선수의 팬이다. “구자운선수는 제 이상형이예요. 하지만 구자운선수는 저보다 5살 연하예요”라며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을 읊조리며 안타까워 한다.

▶ 야구장에 많이들 찾아오셨으면…

연극 배우들은 많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 더욱더 힘을 낸다. 마찬가지로 선수들도 그렇고 심씨도 관중들이 대거 운집해있을 때 흥이 절로 난다고 한다.

“해외스포츠가 강세를 보여서 그런지 한국프로야구가 조금씩 죽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라고 말한 심씨는 구장에 관중들을 많이 유도할 수 있도록 구단마다 적극적인 마케팅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구장에서 무심코 들려오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 그 멘트에 심씨의 야구사랑이 묻어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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