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접고 수다떨듯 펼친 남성론

중앙일보

입력

"우리 여자들은 근질근질해요. 남자들이여, 제발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줘요"

왠 은근한 유혹의 사이렌인가 착각하지 말자. 〈로마인 이야기〉의 여장부 시오노 나나미가 고품격 에세이집 〈남자들에게〉(한길사)에서 던진 '스타일이 있는 매력남' 대망론의 준엄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책은 좀스러워진 현대남성들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고 간혹은 해피하게 띄워주기도 했다.

그랬더니 그 바톤을 국내의 대표적인 커리어우먼인 건축가 김진애(47.서울 포럼 대표)가 이어받았다.

그가 선뵌 단행본 〈남자, 당신은 흥미롭다〉는 시오노의 〈남자들에게〉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다는 점은 괜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 같은 것을 시원하게 벗어던진 발상의 자유로움 때문이고, 다르다는 점은 '품격' 대신 '수다' 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하긴 저자는 자신없는 품격을 괜히 부풀리려는 노력 대신 '생긴대로의 따따부따' 를 자기 전략으로 선택했을 게다.

사실 저자는 '좋은 건축, 좋은 도시에는 항상 좋은 사람, 근사한 사람이 있으니 사람에 대한 관심은 끝없는 관심일 수 밖에 없다' 선언으로 독자적인 남성론 개진의 출사표를 던진다.

그의 남성론은 거침이 없다.

"남자들은 참 웃긴다. 자기 중심적이다. 남자들은 썩 귀엽다. 항상 멋있고 싶어하니 말이다. 왜 남자는 그렇게 힘있고 싶어할까. " 김진애의 〈남자, 당신은 흥미롭다〉는 자신이 평소 이런 의문을 가졌다면서 스스로 대답을 시도한다.

김진애는 '타임' 선정 '21세가 차세대 지도자 100명' 에 뽑혔던 이력이 있고, 그를 아는 사람은 모두 '치마만 둘른 남자같은 여자' 라고 말한다.

그런 김진애가 자신은 '남자들의 열렬한 팬' 이라고 고백하면서 다구치는데 당해낼 도리가 없다.

저자는 '우리시대 가장 철이 든 남자' 로 고건 서울시장을 꼽고, '우상' 으로 봅 딜런과 신중현을 들었다.

가수 박진영은 '나의 요술쟁이' 라고 한다. 자신의 편견을 용서해달라는 전제아래 뚱뚱한 남자는 매력이 없으니 용서할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거다' 싶은 득의의 내공 섞인 명제 같은 것이 없어 조금은 섭섭하지만, 김진애식 수다의 요체가 '진짜 남자 대망' 으로 모아진다는 점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힘을 빼고 힘을 키우면서, 그리고 철듦과 철없음을 오가면서 '진짜 남자' 가 되라" 는 주문이다.

강한 주관을 전제로 한 글이지만, 대부분 옳은 주장이라서 허허 웃으면 된다.

생각 같아서는 독한 소리 모진 소리가 실명을 노출해 더 많이 나왔으면 글의 파괴력이 높고, 읽는 맛도 좋았을 듯 싶다.

시오노 처럼 자기는 목덜미가 굵직한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식의 툭 트인 자기 고백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은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그 유명한 엄숙주의 풍토를 염두에 둔다면, 김진애의 책은 파격임이 분명하다.

뒷전의 쑥덕공론 대신 '드러내놓고 떠드는 방식' 을 선택한 그의 책의 출현은 아마도 시대가 바뀌었다는 징후로 읽어도 좋을 대목이다.

저자는 이 책과 짝을 이루는 단행본 〈여자 우리는 쿨하다〉를 동시에 펴냈다. 제목에서 보듯 여성으로서의 동지애를 전제로 한 글이다.

'권력과 권위의 의무를 짊어진 여자가 되자' , '위대한 여인이 되기를 두려워말자' 는 자신감 넘치는 선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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