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민주당, 조병옥·장면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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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정당은 그 나라의 사회간접자본(SOC)과 같다. 민주정치를 시작한 이상 정당의 능력이 곧 정치리더십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민주당이 걷는 길이 안타깝다. 경기지사 후보와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하더니 자신들이 시작해 타결했기에 업적으로 만들어야 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결사반대했다.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중심 정당이 의회주의조차 부정하는 집단행동까지 선동하고 있다. 가는 길이 다르다던 민노당 등 진보좌파 정당과는 합당까지 추진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참패 후 ‘뉴 민주당 플랜’을 강구하고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하던 그 민주당이었던가를 의심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한나라당의 무능이 곧바로 민주당의 탈선과 정체성 상실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정체성 혼란은 민주당사에 나란히 내걸린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두 초상화로 상징되기도 한다. 선거 때나 주요 행사만 있으면 지도부가 두 전직 대통령 묘소만을 참배하는 것이 공식 의례가 된 지 오래다.

 민주당은 누가 뭐래도 건국 이래 한민당-민국당-민주당을 계승한 한국정치의 중심축이었다. 김성수-신익희-조병옥-장면으로 이어진 리더십은 우리 정치의 정통 세력이었다. 보수정당에 이승만·박정희가 있다면 민주정당엔 조병옥·장면이 있다. 조병옥은 이승만과 함께 공산주의로부터 한국을 지킨 최대 공신이다. 좌우투쟁의 시기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동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건국을 주도한 것도 조병옥이었다. 6·25전쟁 시 내무장관 조병옥은 국방장관을 대신하며 대구 교두보를 진두지휘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랬기에 조병옥은 국민적 찬사와 함께 존경받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조병옥·장면의 민주당은 우리 사회가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빈곤타파의 길로 나아가게 만든 주역이다. 당은 1956년 선거를 계기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시했다. 4·19 이후 집권당이 된 민주당의 장면 정부가 내건 것도 ‘반공 강화’와 ‘경제 제일주의’였다. 장면 정부는 ‘국토건설계획’과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워 근대화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당시 장면 총리는 국토건설본부장을 직접 맡았고 기획부장은 장준하였다. 그만큼 민주당은 국토건설과 반공투쟁, 그리고 경제발전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며 그 방향으로 한국이 나갈 길을 개척한 정통세력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목도하는 민주당에선 60년 정통세력으로서의 자부심과 국가발전 청사진을 찾기 어렵다. 그것은 한나라당을 뛰어넘어 자유롭고 번영된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개척해 주길 염원하는 국민적 기대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다. 조병옥·장면이 만든 ‘빛나는 업적’을 계승하는 대신 ‘반대투쟁’만을 내세운 정당으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당이 추구해 온 자유와 번영을 향한 노력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만 볼 것이 아니라 조병옥·장면을 보며 역사를 계승하고 새 길을 찾아야 한다. 쌓아올린 업적과 전통을 계승하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대한민국의 길을 개척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결국 진보좌파 세력에 휘둘리며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들러리의 길이고 대한민국의 길도 아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