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세대 - 2020년 그들이 이끄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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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K씨는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인터넷을 켰다. 대만을 향해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정보가 떴다.그는 곧바로 반도체 회사주식 수천 주를 주문했다.대만의 태풍 피해가 반도체 값을 인상시킬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이것으로 대충 하루 일을 끝낸 K씨는 10대들이 즐긴다는 ‘가상 마약’을 해보기로 했다.

1분만 화면을 응시하면 눈이 번쩍하고 온몸이 조여 든다는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자 과연 강렬한 쾌감이 엄습해왔다.

옷을 벗고 몸의 주요 부분에 코드를 들이댄 뒤 화면을 응시하며 즐기는 ‘사이버 섹스’와는 또다른 진하고 음습한 맛이었다.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든 K씨는 “요즘 애들은··” 하면서 스위치를 껐다.

그러고난 K씨는 영화 사이트에서 좋아하는 영화 몇 편을 클릭,짜깁기로 제3의 작품을 만들어본다.세상은 화평했고 대부분 독신인 K씨 친구들도 이와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인 2020년,40대로 접어든 오늘날의 n세대가 맞을 법한 일상이다. 정치·사회적 가치에 다소 부정적이면서 경제활동과 자아 실현에는 큰 관심을 갖고있는 n세대는 기성세대의 유교적 가치관을 이어받은 가운데 서구적 자유로의 탈출을 꿈꾸는 이중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인터넷 키드인 이들은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조만간 개화할 가상현실 환경의 중심부로 흘러가게될 전망이다.가상현실과 n세대의 결합은 어떤 신세계를 창출할 것인가.

작가이며 문화평론가인 하재봉씨는 “유토피아가 될 수도,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인터넷과 가상현실의 발달로 신체적·성적 불평등과 정보 획득력의 차이가 없어져 개인의 자기실현이 증대된 유토피아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거대자본 등 특정계급의 정보독점과 이에 대한 n세대의 무관심으로 개인이 권력에 철저히 통제되는 디스토피아의 가능성도 있다.

대학에 5년째 출강, n세대들을 관찰해온 강헌(대중음악평론가)씨는 디스토피아의 관점에 선다.”정치·사회적 관심을 결여한 가운데 막연한 개인·자유주의로 흐르는 n세대는 자칫하면 파시즘적인 체제를 낳을 수도 있다” 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소수의 정보독점자인 ‘테크노 계급’의 독재 아래 n세대 대중 상당수가 사이버 섹스와 게임에 탐닉하며 혼자 생활하는 ‘사이버 룸펜’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고 진단한다.

반면 n세대 문화평론가 이원재씨는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얘기한다. “인터넷을 통해 투표는 물론 대통령 등 공인의 자격 검증이 즉각 이뤄지고 사안별로 시민들이 의사를 표현하는 네트워크의 발달로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시민사회가 개화할 수 있다” 는 반론이다.그러나 “인터넷의 ‘혁명성’이 빠른 속도로 자본의 도구로 흡수된 경험을 볼 때 n세대의 역동성도 같은 전철을 반복할 우려는 있다”고 덧붙인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20년 뒤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판단하는 데는 n세대의 기술적 감수성이 초점이라고 진단한다.기술의 발전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n세대들은 20년 뒤 지금의 기성세대처럼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환경변화에 낙오할 가능성이 크며 그것은 곧 n세대 대중의 사회적 소외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이씨는 “n세대들의 힘은 그들이 지금 인터넷과 밀착돼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터넷을 뛰어넘는 급격한 기술발전에도 잘 적응하는 감수성 보유여부에 있다.”고 지적한다.

조사에 따르면 n세대들은 이 점과 관련, “기술발전에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61%)는 의견을 보여 ‘첨단세대’답지 않은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50%),중학생(57%),고등학생(62%),대학생(67%)등 첨단기술에 노출된 경험이 많은 연령층일수록 낙오 우려를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동연씨는 “n세대의 첨단성·기술친화성만 강조하는 것은 이들을 신비화·상품화하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며 “90년대초 당시 젊은이들의 표피적 개성만을 부각해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던 신세대론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술·환경변화에 대한 n세대의 적응력·감수성을 측정하고 증대시켜 줘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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