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900조 눈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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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주부 김민정(41·여)씨는 지난 8월 급하게 돈이 필요해 은행을 찾았다가 낭패를 봤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꽉 죄면서 대출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대신 김씨는 보험약관대출을 받았다. 김씨는 마침 수년 전부터 이것저것 들어놨던 보험 덕분에 아쉬운 대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올 3분기 은행의 가계대출이 막히자 김씨처럼 보험약관대출로 돈을 빌린 사람이 늘어났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가계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줄었지만, 보험사 등 일부 금융회사는 풍선효과로 오히려 대출이 더 늘었다. <관계기사 e6면>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신용카드 등 외상판매)을 합한 가계 빚은 892조 4571억원으로 사상 최고였다. 가계 빚(가계대출+판매신용)은 2010년 2분기 802조8259억원으로 800조원을 처음 넘어선 이후 계속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늘어나는 속도는 전 분기보다 더뎌졌다. 2분기엔 18조9000억원 늘었지만 이번엔 17조8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금융당국이 주로 은행 가계대출을 강하게 규제하면서 은행 가계대출 증가폭(9조2000억원→5조4000억원)이 큰 폭으로 줄었고, 저축은행 등 비은행 가계대출(6조4000억원→5조4000억원) 증가폭도 줄었다. 반면에 2분기 5000억원 늘었던 보험대출은 3분기 3조원이나 늘어 증가폭이 커졌다.

한국은행은 “은행 대출이 어려워지자 보험사 약관대출 등으로 대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신용카드 사용액 등 판매신용 잔액도 전분기보다 증가폭이 확대돼 잔액이 51조5340억원으로 불었다.

 한국은행 박승환 금융통계팀장은 “가계부채 위험도를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선은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현재보다 증가 속도가 빨라져선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실장은 “가계 빚이 경제 규모에 비해 많고 늘어나는 속도도 우려할 만하다”며 “정부와 금융회사·가계 모두 증가 속도를 둔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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