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과 手話로 나누는 아빠와 딸의 사랑

중앙일보

입력

'이동전화'의 편리성과 효용을 강조해온 이동통신의 이미지 광고. 이제 '모바일 인터넷'을 알려야 하는 상황을 맞지만 여전히 '사랑'이라는 테마를 견지하고 있는 LG텔레콤의 광고가 눈길을 끈다.

실제 청각장애인 학생을 캐스팅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낙비. 학교 다니던 시절엔 우산 없이 내리는 비만 바라보며 ‘이걸 맞고 가, 말아’ 갈등해야 했던 하교길이 유난히 잦았다. 이럴 때 아빠나 엄마가 짠∼하고 우산이라도 들고 나타난다면 좋으련만, 기약 없는 그 등장을 마냥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소낙비. 어수선한 하교길 교문 앞에 한 여학생이 비를 피해 서 있다. 갑자기 울리는 PCS에 ‘아빠가 데리러 갈게’라는 e-메일이 도착해 있다. 잠시 후, 우산을 받고 나타난 아빠에게로 뛰어들며 여학생은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아빠, 사랑해요.’

이 평범한 스토리를 비범하게 만드는 건, 여학생의 ‘사랑해요’가 목소리가 아닌 수화로 들려진다는 데 있다. 청각장애인 딸에게 곧 우산 들고 갈 테니 비 맞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전하는 데 e-메일, 그것도 모바일 인터넷으로 보내는 e-메일만큼 효과적인 것이 또 있을까. 모름지기 첨단기술이란 인간 생활을 돕기는 돕되,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는 ‘무식하게 차가운 사이버네틱’이 아닌, 사람 사이를 더욱 다채롭게 이어주는 ‘살맛 나는 세상살이’에 봉사해야 함을 잔잔하게 드러내고 있는 광고다.

들리지 않아도 모바일 인터넷을 저렇게 이용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서비스는 ‘ez-i 1200字 e-메일 서비스’다. 별도 가입 없이 기존 인터넷 메일을 그대로 이용해 1천2백자까지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

광고 끝에는 ‘사랑을 나누는 새로운 방법-LG텔레콤’이 로고송과 함께 뜬다. LG텔레콤의 브랜드 이미지 광고는 지속적으로 ‘사랑’이라는 테마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어떤 분야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동통신 서비스지만, 트렌드에 따라 이런 이미지 저런 이미지로 옷을 갈아입기보다 ‘사랑을 전하는 전령사 노릇’을 조용히, 계속 해가고 있음을 보여 주자는 전략이다.

LG텔레콤의 초기 광고를 떠올려보자. 영화 촬영 중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처량맞게 서 있던 김승우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 마디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온다. ‘아빠! 아빠빠바…’. PCS 업계의 후발주자였던 LG텔레콤의 인지도를 순식간에 올려놓은 ‘아빠’편이다.

그 전의 ‘자장가’편 역시 PCS를 통해 전해지는 사랑의 힘을 보여 줬다. 우는 아기를 돌보지 못하고 쩔쩔매던 김승우가 급기야 촬영중인 아내 이미연에게 전화를 걸고, 아기는 조용하게 들려오는 엄마의 자장가 소리에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드는 내용. 김승우, 이미연 부부를 등장시켜 아기를 둔 연예인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했던 광고들이다.

온 국민이 다 들고 다니게 된 이동전화의 효용을 논할 단계를 넘어서자 브랜드 이미지 광고도 잠시 쉬었다. 대신 기능이나 상품을 소개하는 광고들이 줄을 이어 나왔다. 그리고 이제 다시 ‘모바일 인터넷’을 알려야 하는 상황을 맞아 재개된 브랜드 이미지 광고에서, LG텔레콤은 설정과 등장인물은 바꿨지만 ‘사랑’이라는 테마는 견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새로운 이미지 광고 ‘수화’편에 등장하는 여학생 모델은 서울 선화학교 중등부 1학년에 재학중인 실제 청각장애인 ‘남고운이’ 양이다.

그 또래의 밝은 표정과 생각을 지닌 맑은 소녀의 모습으로, 또 어색하지 않으면서 잔잔하게 일반 연기자가 보여줄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의 심리까지 표현해낼 수 있었던 건 이런 캐스팅 덕일 터이다.

LG텔레콤은 ‘수화’편에 이은 브랜드 이미지 광고 2편을 계속해서 내보낼 모양이다. 그 소재와 내용이 또 어떤 감동을 주며 고개 끄덕거리게 만들지 기대하게 만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