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관련 진보 주장은 맞은 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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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 대국민 담화를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

2007년 4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2층 카메라 앞에 섰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한 지 14개월 만에 타결하고 담화문을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참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는 육성이 TV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4년7개월 전 노 전 대통령의 육성 담화는 그러나 악화된 국론분열에 시달리고 있는 ‘2011년 11월 대한민국’에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담화문 첫 부분에 “그동안 (FTA 협상이) ‘미국의 압력’이라는 얘기가 난무했고,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매국’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고 했다. 비준안에 찬성하는 정치인들에게 요즘 트위터 등에서 ‘매국노’란 비난이 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정부가 무엇이 이익인지 손해인지조차 따질 역량도 없고, 줏대도 없고 애국심도 자존심도 없는 그런 정부는 아닙니다”고 못 박았다. 노 전 대통령은 정부를 ‘장사꾼’에 비유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미래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의 변화까지 내다보는 큰 장사꾼’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닙니다.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국가 경쟁력의 문제입니다. 민족적 감정이나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을 전후해 민주노동당·민주노총 등은 한·미 FTA 협정문이 체결된 용산 하얏트호텔 앞에 모였다. FTA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이런 진보진영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FTA에 대한 이념적 접근을 단호히 경계했다.

 “걸핏하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들이대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저는 ‘너 신자유주의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 빨갱이지?’ 이런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FTA를 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EU(유럽연합)도, 중국도, 인도도 FTA를 합니다.”(2008년 11월 인터넷 홈페이지 ‘민주주의 2.0’에 올린 글)

“정치에 참여하는 진보주의 사람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정책은 과학적 검증을 통해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허하게 교조적 이론에 매몰돼서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면 안 됩니다. 일부 고달프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끌고 갈 수 있겠지만… 개방 문제와 관련해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것이 없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외채 망국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았습니다. WTO(세계무역기구) 가입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도 반대했는데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외국 자본이 들어와 한국 자본을 지배해서 결국 한국 국민들을 노예화한다는 논리가 결국 완전히 다 바뀌지 않았습니까?”(2009년 발간된 저서 『성공과 좌절』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FTA의 실무적 부분까지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임 6개월 후인 2008년 8월 노 전 대통령은 진보진영 매체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미 FTA는) 약간 ‘도전적인 선택’으로 적절하다고 봅니다”라고.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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