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이기심은 독, 이타심은 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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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들의 박애정신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곡을 찌르는 듯한 이 한마디는 초기 자본주의 사상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타인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열심히 일하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랑이나 이타심 등은 종교의 영역에 맡기라고 설파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경제는 스미스의 말을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게 한다. 당장 유럽의 재정위기만 봐도 이기심이라는 병폐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위기의 발생 경로를 따라가 보자. 먼저 정치권은 유권자의 인기를 끌 만한 포퓰리즘적 제도를 도입한다. 부족한 재원은 국가가 빚을 얻어 충당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정적자가 증가한다. 정부는 남의 돈을 빌려서는 부족한 재원을 지속적으로 보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복지는 줄고 부채는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지금 유럽에서의 젊은이들 폭동은 차라리 정해진 수순에 가깝다. 자신들은 복지 혜택을 누리지도 못했는데 세금만 허리가 휘어지도록 떠안게 생겼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전후세대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았다. 자기희생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자식세대에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는 것을 지상과제로 밤낮없이 일했다. 이러한 이타적 희생 덕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지금의 풍요로 이끈 이타적 희생정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가. 국책산업을 둘러싼 지자체 간의 힘겨루기,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라. 대답은 분명해 보인다. 다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현재의 불편을 감수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든 야박한 세상이 됐다.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전환기를 맞이한 리더십이다. 과거 권위주의적 리더십하에서는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윽박질러 이기심을 꺾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 재스민 혁명을 보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전근대적인 권위주의 리더십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지만 해결방안은 분명히 있다. 우선 지도자들이 국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을 설득해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이타심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 다음에는 시스템을 만들어 뒷받침하는 것이다.

 스웨덴이 그렇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이면서도 남부 유럽 국가들이 안고 있는 재정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33.7%다. 지난해에는 5.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의 이면에는 이타심이 있다.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세부담률(약 35%·우리나라는 20% 내외)이 그것이다. 다른 사람 혹은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의 소비를 줄인 것이다. 사회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해 솔선수범한다.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 올바르게 사용된다는 확신을 주는 투명한 정치·경제 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이기심은 독이고 이타심은 약이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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