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제일 비싼 명동에서 가장 싼 화장품값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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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명동에선 브랜드숍 화장품업체들의 ‘반값 할인’이 한창이다. 브랜드숍 매장에선 ‘1+1’ ‘최대 50% 할인’과 같은 내용의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 명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다. 그곳에선 지금 ‘반값 할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수분크림 2만1900원짜린데요, 지금 사시면 1만950원이에요. 50% 할인된 거죠. 아이크림 앰풀은 1만9800원인데 9900원이고요.”

지난달 31일 명동 중앙로에 위치한 브랜드숍 매장인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 네이처리퍼블릭에 따르면 이곳의 매장 임대료는 보증금 32억원에 월세 1억5000만원. 말 그대로 ‘금값 매장’에서 그러잖아도 싼 제품을 절반가격에 팔고 있었다.

4호선 명동역에서부터 명동예술극장에 이르는 300m 길이의 명동중앙로를 둘러봤다. 각 건물 1층 58개 매장 중 브랜드숍 화장품 매장은 18개. 이들 매장은 단 한 곳도 빠짐없이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제품 가격을 직접 깎아주느냐 다른 제품을 덤으로 얹어주느냐 등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저가를 무기로 내세운 브랜드숍 화장품업체들이 반값 할인을 앞세워 ‘가격 혈투’를 벌이고 있다. 시장이 급속히 커지면서 참여 업체들이 급증해 생긴 현상이다. 명동에서 그 현상이 유난히 두드러진 것은 명동이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화장품특구’가 되면서 브랜드숍이 밀집해 있는 까닭이다. 또 다른 브랜드숍인 바비펫 명동1호점 직원의 설명은 처절했다.

 “다른 매장에서 할인하면 당연히 타격을 입죠. 손님이 30~40% 준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할인을 하는 겁니다. 밀리면 죽는 거예요.”

 바비펫은 최근 명동에 2호점을 냈다가 얼마 못 가 매장을 철수한 바 있다. 그는 “후발주자라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만큼 가격 경쟁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2004년만 해도 2000억원 수준이었던 브랜드숍 시장 규모는 올해 1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미샤·더페이스샵 등 한두 개뿐이던 브랜드 역시 지금은 20개가량으로 늘었다.

 가격 할인 전쟁이 시작된 것은 2007년 말부터다. 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미샤가 포문을 열었다. 매달 10일을 ‘미샤 데이’로 정하고 전 품목을 20% 할인해 팔았다. 매년 7월·12월 보름간 전 품목을 최고 50%까지 싸게 파는 ‘빅세일’도 시작했다. 매월 11일과 22일 한 품목을 지정해 반값에 파는 ‘더블 데이’도 운영 중이다.

 미샤 허성민 마케팅팀장은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자연스레 선두그룹의 주도권이 약화됐다”며 “로고 교체 등 브랜드 리뉴얼과 함께 할인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발주자도 속속 할인 대열에 합류했다. 토니모리는 2008년 말부터 매월 넷째 주 금요일을 프렌즈 데이로 정하고 일부 가격을 깎아주고 있다. ‘무(無)할인 정책’을 펴오던 업계 1위 더페이스샵도 지난해 12월부터 매달 품목을 바꿔가며 ‘1+1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한불화장품은 아예 800원짜리 마스크시트, 3900원짜리 립스틱 등을 주력으로 한 초저가 브랜드 이네이처를 출시했다.

 여전히 ‘무(無)할인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스킨푸드는 얼마 전부터 “2004년 출시 후 한 번도 가격 인상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할인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TV 광고를 방영하고 있다. 스킨푸드 관계자는 “다들 할인을 하니 상대적으로 비싸게 파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주들의 항의가 많아 힘들다. 할 수 없이 TV 광고비를 지난해 대비 25% 늘려 잡고 가격정책을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50% 가까운 할인율은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업계에선 “시장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라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전히 새로운 브랜드가 출시되고 있다. 카버코리아는 12일 ‘샤라샤라’란 브랜드를 출시하고 이화여대 앞에 1호 매장을 열었다.

더페이스샵을 운영 중인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한류 열풍을 타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브랜드숍 시장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브랜드숍이 일본·중국 등지에 진출해 있는데 국내보다 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어 이들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기를 쓰고 명동에서 100만원어치씩 화장품을 사간다는 것이다.

글=정선언·류정화·홍상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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