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아서 … 함께 울어보고 싶어” … 미국 의회서 ‘통영의 딸’ 구명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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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저는 가족들이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라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저의 아내와 딸이 제발 살아서 부둥켜 안고 울어보고 싶습니다. 짐승이 아닌, 인간의 울음으로….”

 제8차 북한인권의원연맹(IPCNKR) 회의가 열린 14일(현지시간) 미국 국회의사당 비지터센터의 한 회의실. 칠순이 다 된 오길남(69)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한국·미국·일본·캐나다·카메룬·폴란드 등 6개 국에서 참석한 10여 명 의원들은 오씨의 증언에 귀를 기울였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오씨는 1985년 윤이상·송두율씨의 권유로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북한에 들어갔다. 1년 뒤 독일 유학생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고 독일로 파견된 그는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 뒤로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5년 방북 이전 독일에서 찍었던, 어린 두 딸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사진을 의원들 앞에서 든 채 오씨의 증언은 이어졌다.

 “정말 연약하고 고립무원인 가족의 눈물을, 그 고초를, 아마 뼈밖에 안 남은 앙상한 몸으로 흘리는 눈물을 내 손으로 닦아주고 싶습니다.”

 ‘통영의 딸’로 불리는 오씨의 부인 신숙자씨는 파독 간호사로 일하던 중 오씨와 결혼했다. 신씨는 두 딸 혜원(35)·규원(33)씨와 함께 북한의 통제구역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는 자신의 평양행을 권유했던 윤이상씨로부터 받은 몇 장의 가족사진, 그리고 요덕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한 탈북자들의 증언에서 가족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토로했다.

 이날 총회에는 IPCNKR 상임 공동의장인 에드 로이스 미 하원의원과 한나라당 차명진·이은재·신지호·홍일표 의원, 선진당 박선영 의원 등이 참석했다.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는 기조연설에서 “중국 정부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서명국으로서 탈북자를 북송하지 않고 조약에 따라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씨는 16일 미 국무부 인권담당자들을 만난 뒤, 18일엔 뉴욕 유엔본부를 찾아 부인 신씨 구출운동을 위해 16만여 명이 서명한 온·오프라인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앞에서 열릴 예정인 가족들의 조기 송환을 위한 집회에도 참석한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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