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방형 인사제 '개점휴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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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무원 사회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지난 2월부터 시행한 개방형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정부 각 부처에 결원이 생길 경우 우선적으로 내.외부로부터 공모를 통해 채용토록 한 개방형제도 적용대상은 38개 부처에서 1백30개의 국장급 자리가 선정됐다.

하지만 시행 4개월이 지나도록 민간의 유능한 인재는 거의 채용되지 못하고 대부분 해당 부처의 공무원들로 다시 채워지고 있다.

지금까지 개방형으로 임용이 끝난 자리는 모두 18개(13개 부처)지만 민간인은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5명이 모두 공무원인데, 이중 11명이 내부 직원이다.

지난 4월 건설교통부는 한강홍수통제소장 자리를 개방형으로 채용키로 하고 공모한 결과 민간 전문가 2명과 당시 한강홍수통제소장으로 있던 李재춘씨 등 3명이 원서를 냈다.

정부는 서류심사.면접시험 등을 통해 당시 소장이던 李씨를 낙점, 민간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건교부 관계자는 "심사위원들이 민간인으로 지원한 사람들의 전문성이 부족한데다 기관장으로서의 조직 장악력도 부족하다고 판단해 당시 소장을 다시 선정했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무원들의 보수나 대우가 민간업체보다 좋은 편이 아니어서 제대로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 덧붙였다.

이같은 사정은 관세청이 지난달 공모한 광주세관장(3급)자리도 마찬가지. 외부 전문가 2명과 내부 직원 3명 등 5명이 원서를 냈지만 이곳 역시 당시 관세청 총무과장이던 朴진헌씨가 선발됐다.

관세청 관계자는 "민간인으로 지원했던 두사람이 면접도 보기 전에 포기했다" 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의 외교안보연구원 경제통상연구부장과 안보통일연구부장 자리는 아예 지원자가 한명도 없어 현직에 있던 사람이 그대로 유임됐다.

과학기술부의 중앙과학관장 자리도 과정이나 결과가 비슷하다.

지난해 10월 공모한 이 자리에는 과기부 공무원 2명과 민간인 1명 등 3명이 경합을 벌였으나 당시 관장이었던 L씨로 결정됐다.

L씨는 과기부 기술정책국장을 거쳐 1998년부터 중앙과학관장직을 맡아왔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김병섭(金秉燮.행정학)교수는 "보수가 낮은 데다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 등 이점이 없기 때문에 능력있는 전문가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고 지적했다.

金교수는 "개방형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비록 보수는 낮더라도 상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확대해 보람과 긍지를 갖게 해야 한다" 며 "핵심 보직도 과감하게 개방해야 유능한 인재의 지원이 늘어날 것" 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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