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허원 우리농촌 몰 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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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개월인 아내와 함께 파인애플을 팔러 다녔다. 그땐 정말 창피하고 낯이 뜨거웠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면 언젠가 잘 사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았다. ‘우리 농촌 몰’ 허원(33·사진)팀장과 과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 됐다.

길에서 행복의 문 열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많은 걸 경험해 보자는 결심에 건축 일에 뛰어 들었는데 실패는 거듭됐다. 2005년 12월 초, 아산 곡교천 옆 현충사 입구에 과일 노점을 열었다. 첫날, 끝도 없이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 하루 종일 판 과일은 2만원 어치가 전부였다. 어렵게 시작한 일이기에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말을 수없이 되새기며 낙심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 허 팀장의 다짐을 알았는지 둘째 날은 흔한 말로 ‘대박’이 났다. 1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해가 질 무렵 장사를 마치고 손에 쥔 돈도 돈이었지만 오랜 만에 찾아온 ‘희망’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 눈물을 삼켰다. 그는 “너무 좋아 잠도 오지 않았다”며 그날의 감회에 젖었다.

한복 마케팅으로 시선을 사로잡다

이후 그는 발바닥에 땀이 나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발 품과 손 품을 팔았다. 손님 대부분이 가족 나들이 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달고 맛있는 과일 집이라는 입 소문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허 팀장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입 소문이 나면서 단골이 생겨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허 팀장은 “온양온천 물에 반하고, 주변 볼거리에 반하고, 과일 맛에 반해 자주 온양에 온다는 경상도 자매를 보며 아산시민으로서 자부심도 느꼈다”고 말했다. 오랜 동안 한자리를 지킨 덕에 전화주문도 상당하다. 손님 이름과 자녀들 이름까지 생생하게 기억해 주고 정답게 맞아 주니 단골은 ‘당연지사’이고 전화주문은 ‘보너스’다.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데 너무 일찍 닫는다며 호통을 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천안과 아산뿐 아니라 가까운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길거리 과일가게였다. 맛도 맛이려니와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싶었다. 다행히 현충사 길목에 자리 잡게 돼 주변 정서와 맞는 콘셉트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나들이 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싶은 욕심에 ‘한복 패션 과일장사’를 시작했다. 한복패션에 대한 궁금증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365일, 당도 높은 제철 과일을 공급

허 팀장은 “이제 어엿이 ‘우리 농촌 몰’이라는 상호로 사업자 등록을 했고 임대료도 지불한다. 지금의 자리가 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5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사장’이라는 직함이 쑥스러워 ‘팀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닌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명함도 모두 ‘팀장’이라고 적혀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 모두 ‘팀장’으로 통일했다고 한다. 허 팀장은 “지금은 사과가 제철이다. 부사보다 당도가 높은 계량 품종인 예산 사과를 판매하고 있는데 인기가 높다. 사과 판매가 물이 오르는 12월 중순이면 곶감도 풍년을 이룬다.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곶감 맛에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고 전했다.

 산지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허 팀장의 영업 전략이다. 품종, 관리법 등의 내용을 일일이 정리해 동료들에게 숙지시키고 있다. 오늘도 현충사 길목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허 팀장은 “끝없이 품종을 살피고 맛을 따져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과일집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처음 시작한 그날처럼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과일 맛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경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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