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깔린 철원林野 평당 3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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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 땅에서 북풍(北風)은 ‘추운 바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제 북풍은 ‘시원한 바람’으로 그 의미가 바뀌고 있다. 분단 이후 55년만의 일이다.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무서운’ 북풍이 선풍기보다 더 시원한 바람으로 바뀐 것이다.

북풍이 부는 곳은 말할 것도 없이 파주·문산·연천·철원 같은 접경지역들.

따뜻한 남풍은 북으로 불어가고, 시원한 북풍은 남으로 불어오면서 남풍과 북풍이 만나 난류를 이루는 ‘접경 지역’은 이제 드디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역사적인 6·15선언에 따라 곧 끊어진 경의선 20km를 잇는 작업이 1차로 벌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경제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철도, 항만, 전력 같은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대한 사업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업은 모두 남한과 연결되는 사업이라고 볼 때 바야흐로 ‘접경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셈이다.

사실 접경지역은 지금까지 추운 북풍의 영향으로 땅값이 오르지 않고, 사람들이 투자하기를 꺼렸던 곳. 그래서 사람과 자본은 한수 이남으로 내려가고 북쪽 땅은 늘 철조망이 가로막힌 동토(凍土)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보라. 필자가 수차례 본 칼럼을 통해 강조한 바 있듯이 접경지역의 땅은 새로운 투자지역으로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다.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 그대로다.

경의선 연결공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먼저 요청한 사안이라고 하니, 남북의 병사들이 총 대신 삽을 들고 철도를 놓을 날도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의선을 타고 물자와 사람이 오고 가게 된다. 서울에서 신의주에 이르는 경의선의 연결은 파주, 문산 지역의 땅을 ‘금싸라기땅’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경의선이 남풍과 북풍을 실어가고 실어오면 파주·문산 지역엔 신도시가 들어서고, 주택단지가 건설되며, 접경지역 건설붐이 일어날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다. 이미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접경지역 지원법을 비롯, 6·15선언과 맞물린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마련되면 민통선 이남 20km 이내의 읍, 면, 동 행정구역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현재 지원선정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강화·옹진·김포·고양·파주·동두천·양주·연천·포천·춘천·속초·고성·양구·인제·철원·화천군 등에는 국립대학 같은 각급 학교와 공장, 관광시설들이 대거 들어서게 된다. 농지전용 허가, 토지형질변경 허가를 받아 개발도 할 수 있게 된다. 꿈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순전히 남북대치의 상황논리로 말미암아 개발개념에서 수십년 동안 버려진 땅으로 남았던 이들 북쪽 땅에 본격적인 개발개념이 접목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은 물론 1차로 북한에 그 효과가 꽃필 것이지만 남쪽 접경지역이 그 교두보가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이제 북쪽 땅은 황금의 땅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 파급효과는 막대하다. 강북 땅의 개발 개념에도 영향을 미친다. 투자 마인드가 발을 못 붙였던 한수 이북 지역에서 새롭게 개발 청사진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파주 등지는 벌써부터 땅값이 들먹거리고 있다. 작년에 비해 땅값이 20∼30% 올라 있는 상태다. 유망지역으로 꼽히는 철로변의 장단면·군내면의 밭은 평당 20만원선, 임야는 평당 5만원선을 호가한다. 그리고 경원선이 지나게 될 신탄리역 주변 임야는 평당 1만원선, 대지는 7만∼10만원선. 철원역 주변의 사요리 일대는 물류센터가 들어설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논이 평당 10만원선, 지뢰가 깔린 임야도 평당 3만원선에 나와 있다.

투자시 유의점은 수용가능성(역사 주변)이 높은 지역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 접경지역 개발은 대도시 주변의 투자와는 구별해야 한다. 그 이유로 생태도시, 물류센터를 제외하고는 환경보전 개념도 강하기 때문. 따라서 철로 주변의 대지, 도로변의 토지가 유망하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박3일에 걸친 정상회담은 ‘부동산투자에서의 남북 경계’를 이미 무너뜨리고 있다.

문의 02-538-8284·srcon@chollian.net.

김양석 중앙부동산연구소 소장 / 이코노미스트 제541호 (2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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