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결제 미뤄 중소기업까지 '자금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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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경색에서 시작된 대기업 자금난이 중견.중소기업으로 번지고 있다.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일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대금 결제를 6월말 이후로 늦추거나 장기 어음을 주는 한편 납품 물량을 줄이고 있다.

은행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이 납품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줄이자 중소 납품.하청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경기도 안산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 납품업체인 A사는 최근 완성차 업체로부터 '부품공급단가 인하 합의서' 란 문서를 받았다. 부품 공급가격을 6~7%씩 내리겠다는 내용으로 합의서에 서명한 뒤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합의서는 가격을 석달전 공급한 부품부터 소급해 적용한다는 내용까지 들어있었다. 이 회사 대표는 "납품 물량을 줄이거나 납품계약을 취소할까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아파트 수.배전 설비를 납품한 Z계전은 물건을 보낸 뒤 석달이 지난 최근에야 한달짜리 어음을 받았다.

이 회사 자금담당 임원은 "하도급 업체에 60일이 넘는 어음을 끊어주면 공정거래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결제시일을 최대한 늦추면서 어음을 발행하는 편법을 쓰는 기업이 있다" 며 "어음으로 물품대금을 받을 수 있는 중소기업의 사정은 그래도 나은 편" 이라고 말했다.

납품대금 중 일부를 현금으로 주던 일부 대기업도 최근 두달 안팎의 어음으로 바꿨으며, 중견그룹의 어음은 대부분 석달짜리다.

대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거나 늦추자 설비관련 제조업체는 일감이 적어 힘들어 하고 있다. 부산의 한 밸브 제조업체는 매출이 줄어들자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私債)시장에서 월 3.5%의 높은 금리로 어음을 발행하고 있다.

밸브조합 손상규 이사장은 "은행권이 대기업에도 신규 자금을 주지 않는데 중소기업의 사정은 오죽하겠느냐" 고 말했다.

중견 업체인 C건설은 주말인 24일 전 임원이 대책회의를 열고 임원별로 거래 금융기관을 할당했다.

朴모 상무는 "우방과 뉴욕제과의 자금난이 알려지면서 은행들이 돈줄을 더욱 죄고 있다" 고 말했다.

고윤희.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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