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줄탁동시가 필요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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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최근 경쟁 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기업들의 위법행위가 점점 교묘해지고 조직화되는 추세다. 특히 자동차·조선·철강·정보통신 등 우리나라가 경쟁우위를 보이는 산업 분야에서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의 기술을 빼가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적극적인 예방대책 마련과 함께 기술 탈취를 중대 범죄로 규정해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 있어 기술 탈취는 존망까지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범법행위다.

 불안한 자금사정과 기술인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만이 살길이라는 일념으로 모든 노력을 쏟아부은 중기가 단 한 번의 기술 탈취로 폐업되는 안타까운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실제 많은 중기가 기술 유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2010년 산업기밀 관리실태 조사’에 의하면 기업부설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 중기의 13.2%가 기술 유출을 경험했다. 기술 유출 피해 금액도 건당 평균 14억9000만원에 달한다. 지난 3년간 전체 피해 규모는 무려 5조원에 이른다. 이를 우리나라 전체 중기로 확대해 추산해 보면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기의 산업보안 역량은 대기업의 60% 수준에 불과해 기술 유출에 대비한 기본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기술개발 지원 못지않게 중기가 개발한 기술을 보호하는 방면에도 꾸준한 관심과 지원 확대가 필요함은 너무도 명확하다.

 물론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중기의 기술보호를 위해 상담을 하고, 중기의 기술자료를 전문기관에서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임치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 기술지킴센터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기와 지근거리에 있는 대기업이 협력사의 기술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대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부 중기의 기술을 탈취하기도 했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 있다. 이제는 이러한 오명을 적극 떨쳐버릴 때가 됐다. 대기업은 중기와 상호 동반자적인 협력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협력 중기의 기술보호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이는 대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국내 부품 중기 중 상당수가 대기업에 주요 부품을 납품하고 있어 이들의 핵심 기술이 탈취되는 경우 대기업도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대기업들이 더 이상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취약점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줄탁동시(?啄同時)라는 옛말이 있다. 한 마리의 병아리가 온전하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알 속에서 병아리가 직접 껍데기를 쪼는 노력과 더불어 밖에서 껍데기를 쪼아주는 어미 닭의 배려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줄’과 ‘탁’의 인연을 맺은 중기와 대기업의 힘이 하나로 모아질 때만이 우리 중기들이 온전히 커나갈 수 있으며, 대기업 역시 지속가능한 성장을 영위할 수 있다.

 우리 중기들이 기술보호를 기반으로 온전하게 커나갈 수 있도록 대기업들이 밖에서 껍데기를 쪼아주는 나눔의 미덕을 발휘한다면, 우리 경제가 보다 건강하고 튼튼하게 상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기반이 한층 강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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