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재벌은 어떻게 생겼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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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면 ‘재벌 개혁’이란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비행기부터 라면까지 안하는 사업이 없다’‘재벌의 주인은 마치 황제처럼 행세한다’‘재벌 때문에 외환위기를 맞았다’는 등의 이야기도 들었을 거예요.20대인 재벌그룹 회장 아들이 아버지뻘 되는 회사 임원에게 반말하는 TV드라마도 있었지요.이처럼 재벌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고,그래서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볼까요.사실 우리는 매일 ‘재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답니다.가수 조성모의 노래를 듣는 카셋트나 MP3는 물론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대부분이 재벌 회사에서 만든 것이지요.자동차도 마찬가지고,여러분이 좋아하는 축구나 농구,야구 등 프로 스포츠 구단도 상당수 재벌 회사가 운영하고 있지요.

이 뿐인가요.여러분의 형이나 누나,또는 친척이 대학을 졸업한 뒤 재벌 회사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좋은 데 취직했다’고 하죠.결혼할 때 재벌 계열사 사원이라면 괜찮은 신랑감이라는 말도 들었을 거예요.재벌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원하면서도,재벌은 밉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헷갈릴 때도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재벌이 등장하고 빠르게 성장한 것은 경제개발 전략이나 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자원과 자금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1960년대부터 산업화로 경제개발을 서두르면서 나타난 것이지요.정부가 주도해 기계·조선·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전략산업을 키운다는 명분 아래 기업에게 싼 이자로 자금을 대주고 세금도 깎아 주었습니다.이런 정부 지원 가운데 상당 부분이 대기업에로 쏠렸고 여기서 상당수 재벌이 잉태된 것이지요.

여기저기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많이 만들어서 빨리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던 정부로선 믿을 만한 대기업을 찾았고,대기업들은 여기에 잘 맞춰서 계속 뻗어나가고 덩치를 키웠습니다.일반적으로 공장이나 기계가 많은 대기업은 물건을 많이 만들 수 있어 물건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중소기업보다 적게 들어가는 점을 잘 활용한 것이지요.열개 만드는 회사보다 백개,천개 만드는 회사가 물건 값을 더 싸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방식이 80년대까진 통했어요.정부와 기업이 서로 돈과 일감을 주고 받거나 노조를 탄압하는 등 문제도 많았지만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 된 것은 큰 기업들이 열심히 뛴 덕택도 크답니다.외국의 유명한 학자들도 재벌의 이런 공적은 인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도 바뀌고 제도도 바뀌어야 하는데,재벌 가운데 시대의 변화를 쫓지 못하는 재벌이 있었어요.사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요.아무리 똑똑해도 다소 처지는 사람 열명이 모여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아실 거예요.재벌 회장이 혼자서 수많은 계열사를,또 물건을 판 금액이 몇천억원에서 몇십조원에 이르는 재벌을 제대로 경영하기는 쉽지 않자요.

또 세상이 크게 변해 이제는 지구촌이 거의 하나로 움직이고 닫아 두었던 시장을 완전히 열고 세계의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판에 회장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황제경영’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더구나 경영능력이 있는 지 없는 지 검증을 받지 못한 아들들이 단순히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재벌 회장이 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재벌이 바뀌어야 한다며 여러가지 제도를 고치려 들고 있지요.재벌들도 나름대로 이런 점을 알고 있답니다.계열사끼리 서로 자금을 대주고 물건을 사주고 하는 식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계열사가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것이지요.

필요할 때 서로 힘을 합칠 수 있도록 평소에는 느슨하게 제휴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겠죠.재벌 회장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어요.그래서 재벌 회장은 아주 중요한 계열사 한두개의 경영만 맡고 나머지는 똑똑한 사장을 뽑아서 맡기는 재벌도 늘어났어요.

사실 고생해서 회사를 세운 재벌 회장 보고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완전히 손떼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일 수도 있습니다.정말로 중요한 것은 경영을 하되 잘 안되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 아닐까요.여러분이 뽑은 학급 반장이 일을 잘못하면 반장을 바꾸는 게 손쉬운 방법일 수 있지만,그 반장이 일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여건은 없는지 주변을 돌아보고 환경을 바꿔주는 일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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