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재 물리학자의 꼼꼼한 세상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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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학자에 대한 한 생각

물리학이 인기 없는 분야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물리학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을 쓴 정재승 님이 그 책의 서문에 쓴 글입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조사한 '미국의 미혼여성이 배우자 직업으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 1위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고, 의사, 생물학자 등이 있었답니다. 1백위는 택시운전사였다지요. 정재승 님 표현에 의하면 '그 밑에 가슴 아픈 기사 한 줄이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참고로 101위는 물리학자였습니다."

정재승 님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꿈을 꾸게 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읽고나서였다고 합니다. 정재승 님의 책에서 한 소절 더 이어봅니다.

"양자역학의 체계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에서 보어, 아인시타인 등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과 벌인 열띤 토론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의실이 아닌 호숫가나 근처 산장이나 산책로, 자전거 도로 등에서 물리학자들이 대화를 통해 거대한 우주를 이해해가는 모습이 나에겐 너무도 낭만적이고 감동적으로 비춰졌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6쪽에서

□물리학과 혁명에 대한 한 생각

5공화국의 초기인 20년 전 쯤 우리 대학사회에서는 '혁명'이라는 핏발 선 철학 개념이 화두가 됐었습니다. 눈 앞의 모순들의 뿌리깊은 바탕은 곧 구조적 모순이라고 규정짓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뒤바꾸어버리는 '혁명'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이지요.

학문의 세계에서 그같은 혁명이 일어난 것은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그렇고, 상대성 이론의 아인시타인이 그러했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내놓은 하이젠베르크가 그러했습니다.

□'하늘 아래 새것 없다'에 대한 한 생각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거짓이다'라며 이전 물리학의 성과들을 부정하고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한 하이젠베르크는 그러나 세상 살이를 놓고, '하늘 아래 새 것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대화와 토론들을 스스로 엮어낸 〈부분과 전체〉는 그래서 당시 이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도 읽을 거리가 됐습니다.

하이젠베르크가 대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이 세상에는 새로운 일이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혁명적인 이론을 시작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도대체 무슨 권리로 말입니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이론은 철저하게도 이전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있는데요....."
(이 책 196∼197쪽에서)

20대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대답합니다.

"과학에서의 혁명을 말할 때에는 그 혁명을 정확하게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넌센스에 이르게 됩니다. 확립되어 있는 것을 모두 뒤집어 엎으려는 짓은 자연과학에선 다만 무비판적인 반미치광이들만이 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

나는 과학에서의 혁명이 인간의 공동생활에서의 혁명과 비교가 되는 것인지 잘 알지를 못합니다만 역사상으로 보더라도 영속적인 혁명은 다만 좁게 범위가 한정된 문제만을 해결하고 되도록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 197∼198쪽에서)

이어서 하이젠베르크는 2천년 전 위대한 혁명의 주모자 그리스도가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노라'고 한 말을 들먹이며, 옛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한 생각

빛은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하나는 질량이고, 다른 하나는 에너지라지요. 질량을 가졌기에 빛은 직진할 수 있는 것이고, 에너지를 가졌기에 빛은 파동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빛의 반사에 의해서 보게 되지요. 그러면 빛이 일단 일정한 사물에 비추어졌다가 다시 사람의 눈에 들어오기까지의 아주 짧은 순간에 사물은 변화를 거치게 됩니다. 질량으로도 에너지로도 설명이 가능하지요.

질량을 가졌다면 하나의 사물에 질량이 부딪치게 되면 아주 미세한 양이나마 움직임을 가지게 될 것이고, 사람의 눈에 반사된 사물의 모습은 움직임을 가지기 이전 상황입니다.

또 에너지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사물에 부딪치면 곧바로 모든 사물은 그 에너지에 의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의 눈에 반사된 사물의 모습은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기 직전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결국 우리 눈에 비친 모든 사물은 거짓이라는 결론입니다. 평생을 가도 사람은 사물의 실체를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은 항상 아주 짧은 시간이라 해도 과거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982년 지식산업사 판 〈부분과 전체〉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들

천재는 작은 것에서도 커다란 진리를 찾아내는 남다른 눈과 직관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가 봅니다.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가 살았던 50년 간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및 토론을 엮은 책입니다.

원자물리학이 전공인 하이젠베르크의 이 토론에는 물론 물리학이 주요 주제이지만 철학, 정치, 언어 등도 주요 주제로 자주 등장합니다. 자연과학이 세상살이로부터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루소와 괴테가 종횡무진 등장하지요.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벗들은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자신들의 물리학 작업과 별개로 토론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모든 관심사는 곧 물리학 연구와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베토벤에 의해 확장된 표현수단이 부정될 경우 어떤 표현수단을 채택할 것인지 고민하지요.

다른 모든 관심사가 그들에게는 자신의 관심사로 이어집니다. 역사와 언어학, 생물학에 대한 관심도 그 출발은 모두 달랐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원자물리학에 귀결됩니다.

"과학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새겨본다면 때때로 한탄하고 있는 정신과학(예술분야)과 기술(자연과학분야)라는 두 문화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단절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이 책 1쪽)라는 하이젠베르크의 머릿말은 이 책의 전체를 통괄하는 화두가 됩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물리학자의 관심사가 이토록 광범위하다는 데에서 혀를 내두르게 되고, 또한 그들의 일상 생활 모든 것이 자신의 연구와 곧바로 연결된다는 데에 놀라게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면서, 눈덮인 산을 오르내리면서, 혹은 포커 놀이를 하면서 상대를 속이려는 언어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합니다.

언어에 대한 토론은 곧 원자라고 불리는 최소의 단위에 대한 토론으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세상 모든 살림 살이가 이 천재 과학자의 관심에서 벗어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양자역학이라는 난해한 이론의 석학에 의해 쓰여진 글이라 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대화체로 쓰여진 이 책은 어려운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져 있어서 더욱 매력적입니다.

□'왕과 일꾼'에 대한 한 생각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연구 과정에 오랫동안 영향력을 미친 이야기로 '왕과 일꾼'이야기를 꺼냅니다. "왕이 공사에 착수하면 비로소 일꾼들에게 할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세심하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이 책 29쪽)

세상 모든 일을 자연 과학 연구의 기초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한 천재 물리학자의 세상 읽기. 새 천년을 맞이하며 우리가 다시 돌이켜 볼 만한 글이 될 만 하다고 생각되는 옛 책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 부분과 전체(하이젠베르크, 김용준 옮김, 지식산업사, 1982년)
*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정재승, 동아시아, 1999년)

▶이 글을 보며 가볼 만한 사이트
* 하이젠베르크와 불확정성의 원리 홈페이지
* 양자역학해석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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