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전자 냉장고 … 미국서 반덤핑 예비 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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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상무부로부터 수출용 냉장고에 대해 덤핑 혐의가 있다는 예비 판정을 받았다. 미국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멕시코에서 생산한 ‘하단 냉동고형 냉장고’(냉동실이 아래에 있는 냉장고)에 덤핑 혐의가 있다”는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상무부는 삼성의 덤핑률을 한국산 32.2%, 멕시코산 36.65%로, LG는 국산 4.09%, 멕시코산 16.44%로 봤다. 같은 제품을 한국에서 팔 때보다 미국에서 이만큼 싸게 팔아 결과적으로 미국 내 냉장고 제조업체들에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예비 판정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당장 다음 달 초부터 덤핑률만큼 관세(반덤핑 관세)를 더 물게 됐다. 최종 본판정 결과는 추가 조사를 거쳐 내년 3월에 나온다. 업계에선 만일 두 회사가 최종 덤핑 판정을 받을 경우 연간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물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진성혜 현대증권 수석연구원은 “예비 판정 결과만 보면 덤핑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해당 제품을 수출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며 “다만 냉장고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모델이 한정돼 있어 양사에 미치는 타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LG전자는 “미국 상무부 결정에 수긍할 수 없다”며 “현장 실사 때 적극 대응해 본판정에서 무혐의를 확정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삼성 관계자는 “한국에선 애프터서비스(AS)를 10년 무상 보증하고 미국에선 보증 기간에 차이를 두는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달라 국내 가격과 미국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LG 관계자는 “덤핑 혐의를 받은 모델은 (국내에선 판매하지 않고) 미국에서만 판매하는 모델이다. 무엇을 근거로 덤핑률을 계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종 판결에선 반드시 뒤집을 것”이라고 말했다.

 냉장고 반덤핑 논란은 올 4월 월풀이 두 회사를 제소하면서 비롯됐다. 업계에선 지난해 관련 시장 점유율이 삼성전자 40%, LG전자 19%인 데 비해 월풀은 9%에 그칠 정도로 수세에 몰리자 견제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건희(69) 삼성전자 회장이 말했듯, ‘튀어나온 못’이 돼 때리려고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올 4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을 시작하면서 기자들에게 “전 세계에서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며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말한 바 있다. 월풀은 예비 판정 결과에 대해 “미국 근로자의 일자리와 생계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한국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겼다. 한국 가전업체가 미국에서 반덤핑 혐의로 제소된 것은 1986년 컬러TV 브라운관 이후 25년 만이다.

김기환 기자

◆반덤핑 관세=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제품을 지나치게 싸게(덤핑) 수출할 때 수입국이 물리는 세금이다. 부당할 정도로 싼 제품이 수입돼 자국의 산업이 무너지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피해를 본 업체가 제소를 하면 일단 약식 조사를 통해 덤핑률을 산정하는 예비 판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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