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의 원작만화 vs 영화

중앙일보

입력

7월에 열리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흥미로운 영화 한편이 소개된다.〈소용돌이〉라는 작품이다. 작년에 일본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이토 준지라는 만화가의 동명만화가 원작이다. 그는 일본에서 현재 활동하는 공포 만화가로서 꽤 인기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작년에 이미 〈도미에〉라는 영화가 부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바 있으니까. 직접 한국을 방문해 영화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말수가 적고 말소리가 적은 소심한 인상의 만화가로 기억에 남는다.

이토 준지 만화는 공포만화라기 보다, 엽기만화에 가깝다. 그는 대단한 '아이디어 맨'으로 알려져 있는데 머리카락과 피부 등 신체 일부분을 공포의 수단으로 응용하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잔혹한 만화를 그려낸다. 부천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바 있는〈도미에〉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선 도입부에 '도미에'라는 여학생의 살인이 벌어진다. 급우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뒤 그녀의 신체 일부분이 살아 남아 다른 살인사건을 유발시킨다. 이토 준지는 자신이 만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공포심을 담아낸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도미에〉도 비슷한 경우다. 영화〈도미에〉는 도미에라는 여학생의 복수심이나 질투의 감정 등 비교적 여성적인 심리묘사가 특징적인 공포물이다.

〈소용돌이〉 역시 이토 준지 만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감독은 Higuchinsky. 원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라깡시엘 등의 비디오를 찍은 바 있다. 그리고 〈에코에코 아자라쿠〉라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TV 시리즈의 감독을 맡기도 했었다 (이 작품 역시 만화원작이며 학원을 무대로 한 일종의 공포물이다).

〈소용돌이〉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 마을에서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학교에서 한 학생이 계단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고, 슈이치라는 학생의 아버지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 사건들 배후엔 하나의 공통적인 배경이 있다. '소용돌이' 문양에 관한 것. 마을 사람들은 '소용돌이'와 관련된 것들에 이상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실제로 여기저기서 소용돌이 문양이 발견되기도 한다.

〈소용돌이〉의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 영화는 공포물이라기 보다 괴기영화라고 보는 게 옳다"라고 설명한다. 영화는 원작만화의 기괴한 분위기를 살리면서 정서적 노이로제 상태에 빠진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의 눈알이 소용돌이 문양을 그리면서 마구 돌아간다든지 누군가는 갑자기 달팽이가 되는 등 영상이 충격적이다. 감독은 뮤직비디오에서 작업했던 경력을 살려,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르기보다 화려한 이미지를 빚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다른 경로를 통해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영화배우 신은경이 출연하는 일본영화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실망하는 관객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단역에 그치고 있으므로.

이토 준지의 만화는 영화로 만들기 적합한 구석이 있다. 그는 장편보다 단편에 강한 편이다. 〈도미에〉도 그렇고, 〈소용돌이〉역시 원작만화가 연작식 장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작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방대할 경우 이를 영화로 만드는 것엔 많은 위험이 따른다. 지나치게 축약되고 원작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토 준지의 경우엔 전혀 그렇지 않다. 원작 자체가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영화로 옮기기에 적합하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일종의 '깜짝쇼'를 많이 포함하는 편이다.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기괴하고 엽기적인 장면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이 역시 그의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간단한 특수효과로 관객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작용할 법하다.

그의 원작만화는 일본에서 주로 여학생 등 젊은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이토 준지 만화를 영화로 옮긴 Higuchinsky 등의 감독처럼 막 감독 데뷔를 했거나 혹은 신인급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경우가 많았다. 젊은 만화가의 작품이 신세대 감독들에게 '공포'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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