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자는 '몸'이 전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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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여자가 알몸을 연상시키는 모습과 자세로 "여자는 S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클로즈업되는 여자의 뒷모습 -등과 허리를 거쳐 엉덩이에 이르는-은 어떻게 여자의 몸이 알파벳 S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최근에 내가 본 한 광고의 내용이다. 한 번 보고서 이렇게 선명하게 각인되는 걸 보면 그 광고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이 광고에서 여성의 몸은 가슴과 허리, 엉덩이가 전부이다. '밋밋한', '두툼한', '처진' 혹은 '펑퍼짐한'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두려움을 숨긴 채, S가 되기 위해 광고가 권하는 상품을 사용해야만 할 것 같다. 어느 새 나의 몸은 S라는 대상이면서 S라는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한 소비의 장이 되고 만다.

여성의 몸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단어가 있다. 바로 '쭉쭉빵빵'이라는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예전의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처음 이 단어를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요즘 많은 남자 연예인들은 '쭉쭉빵빵'이라는 단어를 우스개소리로 또는 장난삼아 여자연예인에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여성이 쭉쭉빵빵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말한 화자는 여성을 몸으로만, 즉 '가슴, 엉덩이, 다리'라는 부위별 존재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쭉쭉빵빵'이라는 단어는 발음할 때 느껴지는 미묘한 희화적 요소가 있다. 이처럼 이성과 사고가 결여된 '몸'으로서의 여성은 성적 존재이며 우스개 소리의 주인공으로 희화화되어 버린다.

요즘은 말 뿐 아니라 표현양식도 노골적이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여자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화살표로 이야기하는 여자의 '부위'를 표시 해준다거나 남자 출연자가 함께 출연한 여자의 가슴을 쳐다보는 장면을 정지시킨 후 친절하게 노란 화살표로 '이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보고 있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일요일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TV를 켜면 SBS 〈러브게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여자를 볼 수 있다. 담당 PD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수영장을 배경으로 했을 뿐 결코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목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몸을 드러내는 차림이다. 게다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언제나 주변에는 '퐁당보이'는 없고 '퐁당걸'만 있지 않은가.

TV 매체에서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대상화한다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 여성은 '가슴과 허리, 엉덩이' 뿐인 부위별 존재인지 묻고 싶다. 여성은 언제까지 '쭉쭉빵빵'한 '퐁당걸'이어야 하는가? 여성은 오로지 몸으로서만의 존재인가?

나는 남자들이 여성을 단지 '몸'으로만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 또한 여성에게 '몸'이 전부일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자신들이 결코 여자들을 '몸'으로만 보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왜 여자들은 '퐁당걸'이 되고 '쭉쭉빵빵'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성별관계를 왜곡하는 시선처리에 소리내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TV라는 텍스트를 다르게 읽고 있는 우리의 목소리가 TV 볼륨보다 더 크게 들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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