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과 법정 우롱하는 곽노현 교육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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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언어는 현란하고 현학적이다. 그제 열린 첫 공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선의(善意)’가 또 나왔다. 그는 “어떻게 2억이라는 거금이 선의의 부조(扶助)가 될 수 있느냐는 상식적 추단(推斷)의 함정이 깊지만 나는 보다 높은 도덕률을 실천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지독한 오해의 수렁에 빠져 있지만 내 양심이 알고 하늘이 알고 있다”는 말도 했다. ‘사전 합의 없이 딱한 사정을 보고 선의에 입각한 돈’이기에 죄가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경쟁자의 후보 사퇴는 ‘개인적 결단’이었고, 2억원은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쏠린 혐의는 도덕성이 떨어지는 ‘천박한 의혹’에 불과하다는 참으로 해괴한 궤변(詭辯)이다.

 재판부도 짜증스럽고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재판부가 법정에서 국내외 선거법 책자와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문까지 꺼내 들었겠는가. 공직선거법 230조1항2호 ‘후보자 사퇴 뒤 매수’ 조항도 환기시켰다. “사전 약속이 없었다면 죄가 안 된다는 식으로 피고인이 오해하고 있다”며 사전 합의가 없었기에 선의에 불과했다는 곽 교육감 측의 논리를 반박했다. 후보를 사퇴한 대가로 2억원을 받은 박명기 교수는 새로운 사실도 증언했다. “지난해 5월 단일화 합의 당시 우리 측 협상 담당자로부터 ‘곽 교육감도 (선거비용 보전) 합의에 대해 알고 있다’고 보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곽 교육감은 선의라는 논리를 만들어 법망을 빠져나가려 한다.

 곽 교육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법학 교수다. 후보자 매수 의혹이 제기된 지난 8월 말 이후 미사여구와 비유법을 동원한 말의 성찬을 쏟아냈다. 논란이 제기되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분별없이 보면 법은 왜곡되거나 혼탁하게 된다”고 했다. 영장실질심사에선 “(이면합의는) 권원(權原·법률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근거) 없는 사람들의 비진의 의사표시의 편의적 결합”이라는 난해한 표현을 썼다. 전문용어를 들먹이며 국민과 법정을 우롱하는 듯한 말장난은 멈추길 바란다. 겸허하게 법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를 보여야만 국민이 그에게 ‘진정한 선의’를 베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