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호주 원주민에게도 ‘가을은 사랑의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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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지난주 호주를 다녀왔다. 9월 29일 저녁에 나가 10월 6일 아침에 돌아왔다. 그 며칠 사이 달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인천공항에서 맞은 아침 바람은 일주일 전 저녁에 맞았던 바람과 달랐다. 한결 서늘해진 바람결에 성큼 다가온 가을이 묻어 있었다.

 호주는 남반구에 있다. 그래서 계절이 정반대다. 우리나라는 가을 문턱을 넘어서는 참이었지만, 호주는 여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붉은 사막에 알록달록 박혔던 야생화 무리가 지고 있었으니 우리 계절 감각으로 5월 하순이나 6월 초순쯤 돼 보였다. 만물이 소멸을 대비하는 시점에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안으로 덜컥 들어선 경험은 낯설고 기이했다.

 서호주 주도(州都) 퍼스에서 원주민 애버리진(Aborigine)의 사정을 듣게 됐다. 애버리진은 3만 년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살던 원주민이다. 부메랑을 던져 캥거루를 잡으며 대륙을 유랑하던 그들은 18세기 영국인이 상륙하면서 살육되거나 사육되었다. 호주 정부가 애버리진 탄압의 역사를 사과한 것은 불과 3년 전 일이다.

 시방 호주 정부는 애버리진을 관광상품으로 개발·육성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로 알려진 호주의 랜드마크 ‘에어즈록(Ayers Rock)’도 ‘울룰루(Uluru)’라 고쳐 부르고 있었다. 에어즈록은 호주 초대 총리 헨리 에어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울룰루는 이 지역 애버리진이 누대로 부르던 이름이다. 하나 냉정히 따져보면 애버리진이란 이름도 원주민 고유의 것이 아니다. 알래스카 원주민을 프랑스인이 ‘에스키모’라 불렀던 것처럼 애버리진도 영국인이 만든 단어다. 역사는 여기에서도 승자의 언어로 기록되고 있었다.

 퍼스 지역에 터를 잡은 애버리진은 눙가(Nyoongar)족이었다. 눙가족은 변화무쌍한 대자연 안에서 부족이 생존하는 요령을 계절력에 표시해두고 있었다. 눙가족은 1년을 6개 계절로 구분했다. 비록(Birok·12∼1월), 부누루(Bunuru·2∼3월), 제란(Djeran·4∼5월), 마쿠루(Makuru·6∼7월), 제바(Djilba·8∼9월), 캄바랑(Kambarang·10∼11월). 달의 변화와 상관없으니 이 6개는 월이라기보다 계절에 가까웠다.

 눙가족의 계절은 생존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이었다. 우리의 24절기가 농경사회의 일정표라면 눙가족의 6계절은 수렵과 유랑의 시간표였다. 이를테면 요즘 시기인 캄바랑은 다음과 같은 계절이었다. ‘소생의 계절이다. 벌레가 떼를 짓고 동물은 갓 태어난 새끼를 먹인다. 사냥하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어린 새끼가 있는 동물은 사냥하지 않는다. 꿀과 물고기가 맛있는 계절이다.’

 그러면 우리의 가을과 같은 제란은 무엇을 해야 하는 계절일까. ‘만물이 짝을 찾는 계절이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때다. 구애 의식을 치른다.’ 그러니까 저 멀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원주민도 수만 년 전부터 가을을 탔다는 얘기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옆구리가 허전한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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