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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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부터 사탕수수 농업의 기계화 임무를 부여받았던 사탕수수 생산증대위원회 회장 알프레도 메넨데스는 이 일을 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체는 그 거대하고 복잡한 사탕수수 산업의 노동력을 통합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계의 시험가동에서 얻은 긍정적인 결과는 물론이고 그 결함까지도 기계들을 개선시키는 일에 이용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우리의 정치지도자들과 행정가들, 조합원들과 노동자들의 관심을 일깨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기계 1천 대를 보유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그는 늘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1천 명의 사람들이 그 일을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사탕수수 농업의 기계화라는 당면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1962년 6월, 모아 광산을 방문하는 길에 체는 알베르토가 의료학교를 개원한 산티아고에 들렀다. 그런데 알베르토의 계획을 들은 체는 왠지 떨떠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형은 아바나에서 썩 편치가 못했거나 아무튼 그 비슷했던 모양이군!"

그러나 알베르토는 체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줄 알았다. 그는 마에스트라의 아이들이 당장에 이 학교로부터 받게 될 혜택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러자 알베르토가 학교를 건립한 취지를 이해한 체는 경탄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7월, 마이애미에 망명해 있던 반 카스트로 일파는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세간에 떠도는 얘기대로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설치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8월 말, 체는 무역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다시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같은 달 13일, 그는 흑해의 얄타를 방문하여 캐비어 요리를 맛보고 흐루시초프를 만났다. 9월 3일, 체와 흐루시초프가 서명한 조약의 내용이 공개되었다. 이 협정은 특히 기술과 농업, 수력발전, 철강산업분야 뿐 아니라 군사협력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7일, 쿠바로 돌아온 체는 장관 집무실과 피나르델피오의 군기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락가락하였다. 한편 10월 8일, 국제연합에서 쿠바 대통령 도르티코스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우리는 당신들이 혹시 저지를지 모를 오류를 경계하길 바랍니다. 쿠바에 대한 침략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이는 새로운 세계대전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신생 알제리 공화국의 대통령 아흐메드 벤 벨라(Ahmed Ben Bella)는 쿠바를 곧장 방문하여 체와는 뜻이 맞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케네디 대통령과도 만난 벤 벨라는 직접적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정말 쿠바와 정면대결할 생각입니까?"

그 질문을 받은 미국 대통령의 대답은 이러했다.

"만약 거기에 미사일이 없다면 그러지 않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럴 생각이오."

그 해 10월, 체는 아바나에 모인 청년당 조직원들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젊은 공산주의자의 의무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입니다.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이라는 말은 최고의 인간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최고의 인간은 노동과 학문, 이 세계 모든 민중과의 부단한 연대를 통하여 정제된 인간입니다. 이 지구상 어디선가 무고한 목숨이 꺼져갈 때 고통을 느낄 수 있으리 만치 감성을 계발하여야 하며 자유라는 깃발 아래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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