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사살했지만 … 1360조원 쏟아부은 ‘승자 없는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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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로 미국을 포함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전쟁이 10주년을 맞는다.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이 전쟁에 약 1조2830억 달러(약 1360조원)의 전비를 쏟아붓고도 제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1800명의 미군 희생자만 낸 채 철군을 서두르고 있다. 아프간 사회는 테러 위협 등으로 여전히 불안하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 마르자에서 미 해병대원들이 작전 수행 중 급조폭발물(IED)에 부상당한 동료를 헬기로 이송하는 모습. [마르자 로이터=뉴시스]

“지난 10년간 전쟁을 겪은 아프가니스탄이 당면한 과제는 새로운 국가 건설입니다. 향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군사적·경제적 지원 축소는 아프간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 있는 미국아프간문제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Afghan Studies)의 무함마드 오마르 샤리피 소장은 5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프간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0년간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사회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자유를 찾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국민을 압박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7일로 아프간 전쟁이 발발 10주년을 맞는다. 지난 10년간의 전비는 1조2830억 달러(약 1360조원·미 의회조사국 기준)에 이른다. 미군 사망자는 민간단체(http://icasualties.org) 집계에 의하면 5일 현재 1800명에 이른다. 이에 미 정부는 현재 아프간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아프간에 주둔 중인 9만 병력을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전히 철수시킬 방침이다. 미군 희생과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으로 악화된 국내 여론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다.

 

미국 외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구성하고 있는 47개 국가도 앞다퉈 철군 계획을 밝히고 있다. 4000명을 파병한 프랑스는 내년 말까지 1000명을 철수할 방침이다. 영국도 9500명을 2015년까지 점진적으로 철수시킬 계획이다. 이 때문에 아프간 정부와 국민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샤리피 소장은 “탈레반 세력이 한때 상당히 사라졌지만 최근 파키스탄에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고 전했다.

 실제 아프간에서는 극렬 무장단체인 하카니를 비롯한 테러집단들이 탈레반의 공백을 메우면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 단체는 최근 발생한 카불 소재 미 대사관 공격과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아프간 대통령 암살 사건 등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아프간전 10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홍순남 한국외대 명예교수(아랍외교 전공)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아프간전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타격을 받긴 했지만 테러문제를 글로벌 이슈로 공론화한 것은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반면 무함마드 압둘 가파르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목표 없는 전쟁 때문에 오히려 국민이 테러에 떨고 있다”며 “미국 침공 이전에는 탈레반도 아프간 국민이자 정치세력이었는데 이제는 테러세력으로 낙인찍혔다”고 지적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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