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화백의 세계건축문화재 펜화 기행] 인도 오르차 유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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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종이에 먹펜, 35.5×50㎝, 2011

여성비하 표현 같아 주저됩니다만 옛 어른들의 말씀에 ‘소피 마려운 계집 국거리 썰 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을 대충대충 한다는 뜻이지요. 문화답사여행지에서 이런 모습들을 자주 봅니다. 단체로 몰려와 대충 돌아보고 사진 몇 장 찍고는 돌아갑니다.

 답사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탤런트를 만나 사진이나 찍고 바로 헤어진다면 하루에 몇십 명을 만나본들 뭐가 남겠습니까.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고, 하룻밤을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저는 답사지에서 가능한 한 하룻밤을 보내라고 권합니다. 여행지의 품에 안겨보는 것입니다. 어스름한 새벽 전혀 다른 모습에서 여행의 진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새벽 사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찍어 본 사람만 압니다.

 진짜 여행을 즐기는 분들이 추천하는 인도 여행 1급지가 오르차 유적군입니다. 단체관광으로 보기 어려운 시골 마을로 폐허가 된 유적들이 화장하지 않은 인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르차 성에서 맞는 낙조도 일품이지만 새벽 어스름에 여기저기 흩어진 유적 사이를 거닐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분델라 왕조 시대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집니다. 1500년께 분델라 왕조의 수도가 된 오르차는 1600년 초 무굴제국 제항기르 황제의 후원으로 큰 도시가 됩니다. 그러나 1627년 분델라 왕조가 제항기르의 아들 샤자한에게 도전했다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폐허가 됩니다. 그러나 제항기르 마할을 비롯한 성과 사원들은 아직도 꿋꿋하게 옛 영화를 말해줍니다. 도시 인도인과 다른 진짜 인도인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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