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가족이라는 테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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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의 5월 테마는 언제나 가족이다. 5월의 브라운관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족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지난 주 <병원 24시>에서는 간암으로 투병중인 아버지가 막내딸의 간을 이식받는 가슴 따뜻한 내용이 방영되었다. 아버지는 막내딸이 잘못될까봐 극구 이식수술을 거부했지만 아버지 없는 아이를 만드는 것보다 수술이 더 낫지 않겠냐는 아내의 설득으로 결국 수술을 받았다.

며칠 전 <순풍산부인과>에서는 선우용녀의 꿈을 통해 남편 오지명이 죽게 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가족 간의 갈등과 긴장을 코믹하게 그려내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연기자들의 코믹한 연기가 그리 재미있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모두들 비슷한 감정을 갖기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부모는 가족의 향수를 꿈꾸게 하는 근원이다. 그래서 부모 없는 소녀소년가장의 이야기는 단지 어렵게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가족은 영원한 안식처이며 절대불변의 신성한 그 무엇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늘 아침에 본 한 프로그램에서는, 어머니는 주인공을 낳자마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가출한 상태에서 장애인 오빠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 두 남매의 보호자인 할머니는 그나마 중풍이다.

이처럼 TV 속에는 많은 소녀소년가장과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을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상(ideal)을 부여잡고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들이 아닐까?

소녀소년가장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부모가 없다는 것 때문에 그들에게 꽂히는 사회의 시선들일 것이다. '정상' 가족과 다르다는 차이와 차별이 그들을 더 버겁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어깨는 무너질 지경인데 거기에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아이들은 낳아준 부모가 키워야만 행복하다'는 통념이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따뜻한 애정과 보살핌, 그리고 의식주(衣食住)의 해결은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 그리고 경제적 보살핌은 언제나 부모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어려운 아이들을 지켜보고 혀를 몇번 '쯧쯧' 차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가 아니므로...

그렇다면 부모만이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해답인가? 지난 달 인천에서는 정말 끔찍한 아내구타사건이 있었다. 만약 이처럼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아버지가 있다면 아이는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아동학대를 다룬 프로그램에서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도망쳐 스님과 함께 사는 남학생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스님의 따뜻한 포옹과 스님을 향한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우리의 잣대로 정상·비정상, 행복·불행을 긋는 것은 대안 가족을 희망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부모 노릇은 부모가 아니라도 행할 수 있고, 가족은 꼭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라도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그것을 꼭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말이다.

정상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지워버리는 것, 모두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배우는 것.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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