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벤처가 부리고, 돈은 벤처캐피탈이 챙겨"

중앙일보

입력

최근 발표된 코스닥기업들의 1분기 실적을 보면 창업투자회사들(벤처캐피털)이 영업이익률 1~5위를 모두 휩쓸었다.

투자한 돈에 비해 이익을 많이 낸 대표적 업종인 셈이다.

이를 두고 증권업계에서는 "재주는 벤처가 부리고, 돈은 벤처캐피털이 챙긴다" 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같은 영업실적에도 불구하고 창투사들의 주가는 맥없이 무너졌다.

24일 현재 코스닥지수는 115.46으로 한달 전에 비해 1백70.6포인트(32%) 빠졌지만 주요 창투사들의 주가 하락률은 대부분 이보다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대 창투사인 KTB와 산은캐피탈이 각각 38%, 42% 떨어진 것을 비롯해 한국기술투자는 절반으로 꺾였고 나머지 대부분 창업투자회사들도 40~60%씩 하락했다.

이는 무엇보다 코스닥시장이 추락하는 상황에서는 벤처기업에 미리 투자한 뒤 코스닥등록 이후 지분매각을 통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일이 어렵게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요컨대 창투사들이 앞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심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대부분의 창업투자회사들은 신규투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벤처기업들은 창업투자회사에 넘기는 지분 가격을 예전에는 액면가의 10배, 20배씩 불렀으나 최근에는 이의 절반 이하로 낮추고 있다.

그럼에도 창투사들은 여전히 투자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같은 분위기가 대형 창업투자회사들에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난립했던 중소 창투사들이 정리될 뿐만 아니라, 돈이 필요한 벤처회사들이 널려 있다 보니 여유가 있는 창투사는 좋은 회사를 골라 싼값에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KTB 관계자는 "펀드 규모가 작아 이익 회수율이 떨어지면 당장 영향을 받는 중소 창투사 등은 이같은 폭락장세가 치명적이 될 수 있지만, 펀드 규모가 큰 대형 창투사들에는 오히려 지금이 좋은 기회" 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