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30억, 뮤지컬계에 뚝 떨어진 큰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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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

뮤지컬계에 30억원이라는 큰 돈이 생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주 2012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뮤지컬 지원금으로 30억원을 책정했다. 창작 뮤지컬 육성 차원이다. 대한민국 뮤지컬은 2000년대 들며 급속도로 성장해 왔으나 국가 지원에서만큼은 유독 소외돼 왔다. 순수 무대예술과 문화산업이라는, 다소 상충되는 두 가지 특성이 겹쳐지는 게 오히려 정부지원을 막곤 했다. 별도의 예산이 마련돼 뮤지컬 장르에만 지원되는 건 처음이다. 공연계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원 내용을 보면 이렇다. 이미 공연된 적 있는 창작뮤지컬 7편을 추려 20억원을 지원한다. 대공연은 4억원, 중·소 공연은 2∼3억원씩이다. 해외진출이 가능할 만한 창작 뮤지컬도 3편 골라 10억원을 줄 예정이다. 결론적으로 작품 10편 가량에 각 2∼4억원씩 지원해 30억원을 쓴다는 것이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다. 작품별로 지원금을 나눠주는 건, 규모는 적었어도 예전 서울문화재단·전국문예회관연합회 등에서 해오던 방식과 동일하다. 게다가 MB정부 들어 문화지원의 큰 방향은 ‘직접 지원’이 아닌 ‘간접 지원’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개별 작품 직접 지원을 가급적 지양하고, 대신 인프라 구축 등에 돈을 쓰라는 얘기다. 배고프다고 당장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낚시 하는 법을 전수해 스스로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낫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창작 뮤지컬 여건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당장 먹기 좋은 달콤함만을 쫓다가는 탈이 날지도 모른다. 국가 보호막 아래 있는 순수예술 장르가 오히려 대중의 외면을 받고, 정부 지원 한푼 못 받는 대중가요가 K-POP으로 세계적 위상을 떨치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개별 작품이나 이벤트에 생색용으로 나눠주기 보다 큰 틀에서 고민할 때다.

 현재 창작 뮤지컬이 어려운 건 무엇보다 좋은 창작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키워야 한다. 영화로 치면 ‘한국영화아카데미’ 같은 교육시설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은 위상이 약해졌지만 1990년 중·후반 한국 영화 르네상스에 불을 댕긴 이들 중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 많았다. 국내에 수십여 개 뮤지컬학과가 있지만 대부분 배우 훈련 과정에 집중할 뿐이다. 뮤지컬 작곡가나 극작가, 작사가를 발굴하고 교육시키는 과정은 거의 없다. 배움에 목마른 이들은 대개 해외 유학을 떠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참에 ‘한국뮤지컬아카데미’를 만들면 어떨까. 당장 티는 안 나지만 꽤 똘똘한 투자가 아닐까. 30억원이라는 돈을 훨씬 값지게 쓸 수 있을 듯싶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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