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건축' 展 임충섭씨

중앙일보

입력

19일부터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빛의 건축' 전은 두개의 설치작품과 오브제 소품들로 이뤄져있다.

문명과 자연 사이 부조화를 형상화하고 치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의도다.

전시실 A의 '빛몰이'는 물질이 정신으로, B의 '물매'는 정신이 물질로 환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빛몰이'는 하얀 방, 기울어진 기둥, 바닥의 하얗게 칠한 막대자석 4개, 기둥과 자석을 잇는 실과 바늘, 방향성을 가진 조명, 바닥의 드로잉과 설치물 등으로 구성했다.

나는 전시공간 전체를 하얀 캔버스로 설정하고 중앙에 놓인 기존의 기둥을 해체했다.

그에 따른 파산과 붕괴의 위기감은 주위의 설치물과 바닥의 사군자 드로잉이 기하학적으로 떠받침으로써 엷어진다.

여기서 존재의 울림을 느끼고 삶의 기억과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문명과 자연 사이의 부조화를 화해시킬 수 있는 것은 빛 뿐이다. 내가 빛으로 둘 사이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 빛몰이다.

문명세계가 내게 주는 불안감은 빛에 의해 치유된다. '빛몰이'는 계속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전시장에 들러 바닥에 드로잉을 그리는 행위를 계속할 것이다. 모든 것은 어떤 가능으로 변질되며 그 잔해들이 바로 나의 마음일 것이다.

전시실 B의 제목 '물매'는 경사·기울어짐을 뜻하는 우리 말이다.

'물매'는 그동안 발표한 '물매' 시리즈를 종합하는 작품으로 실과 베틀, 그리고 흙을 재료로 삼았다.

이 작품의 배경은 내가 소년시절을 보낸 충북 진천군 진천면 소강정 마을의 기억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원을 굴리던 굴렁쇠 놀이와 추운 겨울날 제방둑에서 달리기 하던 어린 시절의 이미지가 그 속에 포함돼 있다.

물매는 문명이 절단하고 없애버린 자연과 전통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물매는 또한 산자락이 흘러내리는 자연스러운 선을 의미한다.

우리 전통건축의 흐름과 선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한 셈이다. 도시 곳곳에 수직의 콘크리트 건물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런 기울기(물매)를 가진 산자락을 토막토막 자른다. 이 수직과 수평 사이에 산자락이 갖는 물매를 놓자는 것이 나의 주제다.

'물매'는 실과 흙이라는 원초적 재료를 이용한 내 자신의 자유스런 조형적 율동이다. 실이 가지는 긴장·팽창·비례·시간성의 이미지를 살리고자 했다.

내 작업에서 객관은 기존의 조형질서를 해체·분석하는 것이고 주관은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형질서를 해체·분석하는 것이다.

공간을 대상으로 한 나의 설치는 결국 나와 남의 이야기, 혹은 문명과 자연의 만남과 헤어짐의 얘기가 되는 듯하다.

내 작품은 기념비가 아니다. 나는 작품을 중간에 조금씩 바꾸기도 할 것이다. 관람하는 데 정해진 해석이나 정답은 없다.

이것이 현대 설치미술의 통상적인 해석이며 나는 여기에 동의한다.

예술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무엇'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일은 내게 매우 어려웠다. 미술가는 시각적으로 몰입하는 작업을 한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은 일종의 청각작업으로 나를 전환하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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