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공지천 커피숍 ‘이디오피아의집’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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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60년대 이디오피아의집. 춘천 공지천에서 시내 방면으로 촬영한 것 이다. 오른쪽 사진은 벽화를 그려 넣는 등 새롭게 단장한 이디오피아의집.

1970~80년대 춘천 가는 기차는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경춘선 끝 춘천 공지천에는 커피점 ‘이디오피아의집’이 있었다. 당시 이디오피아의집은 원두커피의 명성이 자자해 토·일요일에는 자리가 없어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실 정도였다. 이디오피아의집에서 미팅을 하거나 맞선을 보면 사랑이 이뤄질 확률이 높다는 소문으로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았다.

 이디오피아의집이 문을 연 것은 1968년 11월 25일. 그 해 5월 19일 6·25 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 하일레 슬라세 1세 황제는 참전기념비 제막을 위해 춘천을 찾았다. 황제는 다시 한국에 방문할 것을 약속하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황제의 쉼터이자 에티오피아 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에티오피아기념관 건립을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용이(82)·김옥희(80)씨 부부는 사재를 털어 황제가 앉았던 자리 인근에 건물을 지었다.

 

딸 부부는 부모의 대를 이어 춘천 이디오피아집 운영을 맡아 옛 명성 찾기에 나섰다. 사진 왼쪽부터 차중대·조명숙씨 부부, 김옥희·조용이씨 부부, 조용이씨 아들 영택씨 부부.

이디오피아의집이 문을 열자 황제는 ‘이디오피아벳(집)’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현판을 보냈다. 또 개관을 축하하며 에티오피아 황실 커피 생두를 외교행랑을 통해 보냈다. 커피 원두 공급은 에티오피아가 공산화 된 1974년까지 이어졌다. 조씨 부부는 주한 에티오피아영사관을 찾아가 생두 볶는 방법을 배웠다. 마땅한 기구도 없어 프라이팬에 볶고 고춧가루 만드는 원리를 차용해 원두커피를 만들었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이디오피아집은 1990년대 후반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조씨 부부가 나이가 들면서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까워한 조씨의 둘째 딸 명숙(51)씨는 이탈리아에서 의사를 하던 남면 차중대(52)씨를 설득해 2009년 이디오피아의집 운영을 맡았다. 이들은 벽화를 그리고 외벽을 짙은 갈색으로 칠하는 등 이디오피아의집을 새롭게 단장했다.

‘강둑길’이라 지어진 새 주소를 ‘이디오피아길’로 바꾼 것도 이들 부부다. 그리고 1~3일 제1회 춘천 이디오피아길 세계커피축제를 열고 있다. 명숙씨는 “부모의 유지를 받들게 돼 기쁘다”며 “원두커피의 발상지인 만큼 춘천을 커피의 도시로 가꾸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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