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일본 대지진을 축하한다? 낯뜨거운 막장응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종력
스포츠부문 기자

남자농구대표팀 허재 감독이 지난 24일 중국에서 한 기자회견은 아직도 화젯거리다. 한국이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에서 중국에 43-56으로 진 다음에 한 기자회견이다. 중국 기자들의 질문은 상식 밖이었다. “당신은 유명한 3점 슈터였는데, 왜 오늘 한국 선수들은 5%밖에 성공하지 못했나?” “오늘도 심판 판정에 불만이 많은가?” 등 대부분의 질문이 조롱을 담고 있었다. 허 감독은 “노 코멘트”로 응수하며 잘 넘겼다. 그런데 한 기자가 “중국 국가가 나오는데 한국 선수들은 왜 움직였는가”라고 묻자 인내심이 바닥났다. 허 감독은 “무슨 소리야 그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어. X발 짜증나게”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중국 기자들은 기자회견장을 떠나는 허 감독에게 “Go back home!” “bye bye”라고 외치며 끝까지 조롱했다. 26일 귀국한 허 감독은 “나 개인이 아니라 한국을 무시해 화가 났다”고 했다.

  지난 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전북과 세레소 오사카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을 했다. 이날 전북 응원석 난간에 걸린 일본어로 쓴 문구는 충격적이었다. 거기에는 ‘日本の大地震をお祝いします’, 즉 ‘일본의 대지진을 축하합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세레소 오사카 측은 즉시 항의했다. 걸개는 전반 경기 도중에 철거됐다. 그러나 파장은 계속됐다. 세레소 오사카 측은 경기 후 AFC에 항의문을 제출했다. 일본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다. 일본 네티즌들도 들고 일어났다. 국내 네티즌들조차 ‘막장 응원’ ‘무개념 현수막’ ‘격 떨어진다’ 등 비판을 쏟아냈다. 전북은 29일 세레소 오사카와 일본축구협회(JFA)에 공문을 보내 사과했다.

 중국에서 모욕을 당한 허 감독의 대응은 지나치게 거칠었다. 그래도 허 감독에게는 불쾌감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러기에 국내 스포츠 팬과 네티즌들은 상당 부분 공감하고 공분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전주에 내걸린 문구는 국적을 떠나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저열했다. 이래 가지고야 어떻게 중국 기자들의 수준을 들먹이며 비난할 수 있겠는가.

김종력 스포츠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