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e스타들-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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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2월 오픈한 포털 중문 사이트 소후(搜狐 www.sohu. com)는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소후는 중국에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편리하고, 빠르고, 정확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신문·비즈니스·부동산·체육 등 다양한 디렉토리를 개발해 네티즌들에게 온라인 교류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중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사이트 방문자수는 6백만명을 상회한다.

설립자는 미국 야후의 제리양과 종종 비교되는 미래학자 장자오양(張朝陽·36). 그는 애특신공사(愛特信公司)를 설립, 소후를 구축함으로써 중국 ICP 사업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80년대에 청화대학을 다닌 張은 당시 여느 중국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으로 유학가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86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마침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7년 만인 93년 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독보적인 가치가 중국에 대한 이해와 지식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도교수를 설득해 MIT의 중국 연락 책임업무를 맡는다.

귀국을 2, 3년 앞두고는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중국과 관련된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는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귀국하기로 결심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인터넷 회사에 다니는 한 친구가 중국의 지역 책임자 자리를 맡아 달라고 제의했다. 전부터 인터넷과 관련된 업무를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당시 그의 목표는 중국에 인터넷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른 시일 안에 새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제의를 수락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대로 그는 귀국한 지 8개월 만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한다. 그는 처음부터 독자회사를 구상했었다.

이를 위해 그는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MIT 실험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96년 8월 애특신공사를 창립했다. 이듬해 시장조사를 거쳐 검색 사이트로 방향을 잡았고 98년 마침내 소후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소후란 검색(搜)과 중국에서 총명한 동물로 통하는 여우(狐)를 조합한 말이다.브랜드가 검색 사이트로서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張은 중국에서 20년, 미국에서 10여년을 살았다. 이중 문화에 대한 체험은 그의 사고를 풍부하게 해 주었다. 그 덕에 그는 특히 인문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98년 2월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디지털 영웅’에 선정됐다.

지난해 10월엔 ‘아주주간’의 커버스토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개통 2년 만에 sohu.co m은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소후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많은 사이트 방문자수를 기록하고 있고, 가장 국제화되고 전문화된 관리체제를 갖춘 사이트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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