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이더에서 프로듀서로 대전환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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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방송은 매체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디지털 미디어 혁명은 편협적으로 인터넷방송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인터넷방송으로 그 논의 내용을 좁혀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정보제공 즉 프로바이더(Provider)라는 개념이 컨텐츠 비즈니스를 선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제는 스스로 다양한 컨텐츠를 기획하고 창조해내는 프로듀서(Producer)로 진화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미디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될 것이다.

96년 12월. 세상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

지난 97년 7월 7일 국내 최초의 인터넷 개인 방송국인 M2 Station을 설립할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방송을 한다면 사기꾼 아니면 몽상가(이건 어디까지나 순화된 단어이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미X놈이라는 말을 더욱 많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둘 중 하나로 취급 받고는 했다. 하긴 인터넷방송은 불구하고 인터넷도 잘 알려져 있던 시기가 아니니 어쩌면 당연했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3년. 지금 국내외를 불문하고 인터넷방송을 모르면 거의 넷맹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3월을 기점으로 350개가 넘는 공식, 비공식 인터넷 방송국들이 출현하고 있고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직접 방송국을 설립하는 붐이 겹쳐 인터넷방송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도 나도 인터넷방송국이라는 타이틀에 매혹되어 인생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방송국 전성시대를 바라보면서 문득 96년의 그 추웠던 겨울이 생각난다. 96년 12월 덕수궁 영국대사관 옆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교회에서는 양희은 씨의 콘서트가 열렸다. 무작정 공연기획사의 담당자를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공연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양희은 씨는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보답으로 예쁜 홈페이지를 만들어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양희은 씨의 콘서트를 싸구려 8미리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인터넷으로 캐스팅 할 때만해도 인터넷 개인 방송 시대를 뒷받침해주는 모든 사회여건은 거의 절망적이었다. 국내 인터넷 회선 즉 인프라 품질은 비싸다고 하는 전용선도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대부분의 개인 사용자들은 PC통신이 제공하는 PPP서비스를 통해 28K모뎀으로 인터넷을 탐험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기본적인 수익모델을 무시한 모험주의

미디어 비즈니스의 원칙적인 수익 모델은 단순하다. 텍스트와 사진, 오디오와 비디오 등으로 구성된 정보 내용을 전파하고 해당 매체에 광고주를 유치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그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방송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이러한 기본적인 수익모델조차 성립시킬 수가 없을 정도로 상황은 처참했다. 일단 컨텐츠를 유통시키는 인프라도 발달되어 있지 못했고 어렵게 인터넷에 접근하는 인터넷 사용자들도 극소수였지만 그 중 인터넷방송을 시청하는 혹은 시청할 수 있는 가시청 사용자는 그 극소수 중 극히 일부였다. 또한 동영상 방송을 가능케 하는 스트리밍 비디오 솔루션의 품질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는 방송이라는 멀티미디어 컨텐츠의 수준은 영화에 비교한다면 무성영화나 다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대행사와 광고주들은 인터넷 개인 방송국을 미디어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3년. 지금 인터넷 광고 시장은 거의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 데이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터넷 광고의 활기찬 증가추이는 인터넷 뿐만 아니라 기존 4대매체까지도 장악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더구나 인터넷방송을 위해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지던 정보통신 인프라 상황은 어떤가? 전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사이버 아파트 붐은 국내 정보통신 인프라를 빛의 속도로 업데이트 시키고 있다. 고속모뎀은 기본이고 케이블TV 네트워크를 활용한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와 기존 전화망을 활용한 ADSL 등이 이렇게 빨리 확산될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방송은 정보통신의 고도화와 함께 점점 주목을 모으게 되는 계기 즉, 돌파구가 되었다.

작은 파이를 놓고 펼지는 혈투

인터넷 광고 시장의 성숙 그리고 인프라의 초고속화 등 인터넷방송을 둘러싼 비즈니스 환경은 3년 전과 비교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인터넷방송국의 수익성 모델 부재라는 상황이다. 물론 수익성 부재 문제는 다른 인터넷 서비스들도 마찬가지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사각의 링 속에서 모든 매체들이 온통 뒤섞여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춘추전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인터넷방송의 급증과 인프라의 고속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인터넷방송 허브 사이트들도 생기고 있지만 원천적이고 차별화 된 인터넷방송의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한다면 아주 작은 파이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무의미한 경쟁만 조장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산업이며 비즈니스

인터넷방송의 춘추전국 시대. 개인적인 인터넷방송국에서부터 기존 방송국과 대기업들의 거대한 인터넷방송까지 모두가 똑 같은 URL 한 줄로 인터넷에 존재하는 평등한 세상. 누구나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듯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인터넷방송국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그저 취미활동이 아닌 기업 활동의 측면에서 인터넷방송을 시작했다면 미디어 산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단지 인터넷으로 방송을 한다는 그리고 컨텐츠를 공급한다는 프로바이더(Provider)가 아니라 인터넷 시대를 선도하는 컨텐츠를 창조한다는 프로듀서(Producer)의 개념에서 인터넷방송의 미래를 찾아야 할 것이다.

뉴미디어 시대를 대비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통합방송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도 이제 본격적인 다채널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종합유선방송과 중계유선방송도 이제 경제논리에 의해 자율적인 M&A가 가능해지고 디지털 위성방송의 도입으로 수많은 채널이 생기고 또 그 많은 채널들을 컨텐츠로 채우기 위한 방송용 컨텐츠에 대한 필요도 차츰 커지게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인터넷방송 4계명

  인터넷방송 4계명  1.수익모델을 찾아라!  2.컨텐츠의 완성도를 높여라!  3.컨텐츠 활용 방법을 찾아라!  4.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변화 속에서 인터넷방송국들은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첫째, 인터넷방송을 통한 수익모델을 찾아라! 그것은 온라인에 있을 수도 있고 오프라인에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적절하게 인터넷방송과 결합시키는 방송국만이 향후 제4기 인터넷 시대를 살아 남게 될 것이다.둘째, 컨텐츠의 완성도를 높여라! 어떤 인터넷방송을 보면 마치 아이들 장난과 같은 혹은 방송물의 기본적인 원칙도 무시한 컨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실험적인 요소를 칭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비싼 방송기자재를 활용하면서 혼자 보고 즐기는 가치 없는 컨텐츠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학교 같은 곳에서 수업을 하는 차원이지 결코 프로들이 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컨텐츠를 만들었다면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라! 인터넷방송은 반드시 동영상 컨텐츠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미래 방송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해당 컨텐츠를 다룰 수 있는 인력과 기획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방송은 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인터넷이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제는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국지적이고 편협한 사고로는 이 험난한 인터넷 시대를 헤쳐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미디어 세계대전은 이제 막 스타트라인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같은 춘추전국 시대에도 옥석은 가려지기 마련. 진주가 조개 속에 있든 국밥 속에 있든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에겐 진주로써의 가치를 선사하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인프라와 자본 그리고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발견된 진주는 보석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작은 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수많은 인터넷방송 중에 과연 무엇인 진주이고 무엇이 돌인지는 조만간 가름이 날 것이며 그것은 오직 미디어를 수용하는 소비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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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미디어, 저널리즘을 넘어서인터넷 속의 TV, 인터넷 방송국의 출발과 미래
인터넷미디어 대탐험

글 = 윤지상 인터넷방송국 채티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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