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예금 5000만원 보장은 공짜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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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프라임 5.9%, 제일·제일2 5.8%, 대영 5.7%’.

 18일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들이 최근 실시한 특판예금 금리다. 시중은행의 예금금리(3.8∼4.1%)보다 많게는 2%포인트 이상 높다. 저축은행들이 회생을 못해도 원리금 5000만원 내에서는 정부가 전액 보장해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저축은행별로, 가족들 명의로 5000만원씩만 분산해 놓으면 몇억원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 이런 예금보장제도의 장점이 워낙 잘 알려졌는지 이번 7개 저축은행 예금자 64만 명 중 5000만원 초과 예금자는 4%도 안 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예금 보장은 공짜가 아니다. 저축은행이 부실로 넘어지더라도 5000만원까지는 예보기금에서 보장해준다. 예보기금은 예금에서 일정액을 보험료로 쌓아 적립하는데 저축은행 계정은 이미 올 초 2조7000억원이 펑크가 났다. 올 2월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국회를 설득해 저축은행 특별계정이란 걸 만들었다. 은행과 보험사 고객들이 내는 예금보험료 중 45%를 저축은행 특별계정에 쌓아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특별계정은 생긴 지 몇 달도 안 돼 5조2000억원이나 마이너스다. 앞으로도 수조원대의 돈이 더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공적자금 투입도 불가피하다. 저축은행 부실을 일반 국민과 은행·보험사 고객들이 책임지는 셈이다.

 시장 안정에만 급급한 정부도 이런 부분들을 외면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예금보장제도를 홍보하면서 심지어 명의 분산을 안내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에도 다수의 예금주가 거액을 예치하면서 차명계좌로 5000만원 이하로 분산 예치하는 ‘쪼개기 예금’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5000만원만 넘지 않으면 모두 예금 보장이 된다. 모럴 해저드가 완벽하게 가능한 구조다.

 시장 불안을 감안할 때 당장 예금 보호 한도를 낮추는 게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투명성과 능력에 걸맞게 금융업권별로 예금 보장 한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자산 500억원에 고금리인 소형 저축은행과 자산 200조원에 저금리인 시중 대형은행의 예금 보장 한도가 똑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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