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없는 유망 벤처는 '금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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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 운영시스템 개발업체인 ㈜자이온은 최근 한달간 대우전자.한국IBM 등 대기업들로부터 전략적 제휴를 하자는 제의를 5~6건이나 받았다.

리눅스 운영체계(OS) 업체론 국내 선두라는 평가를 받는 이 업체의 가치를 대기업들이 인정한 결과이다.

대기업들은 공동 해외진출.지분 투자.공동시스템 개발 등의 조건을 제시하며 제휴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자이온의 김봉관 기획실장은 "대기업의 조직.마케팅.자금 능력을 벤처기업의 기술력과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 면서도 "제휴를 제의한 업체 중 일부는 구체적 사업 계획을 제시하지 않은 채 우리와 먼저 손잡고 보자는 식의 접근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벤처거품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서도 잘 나가는 벤처기업들은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온라인 비즈니스를 강화하기 위해 이들과의 제휴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예전같으면 하청업체 대접을 받던 중소기업들이 '벤처' 간판으로 새롭게 태어 나면서 입장이 뒤바뀐 경우도 적지 않다.

◇ 대기업 연구용역 '노탱큐' 〓LG전자는 최근 서울벤처밸리에 있는 디지털 신호처리 기술개발 업체인 B사에 연구용역을 주려다 거절당했다.

B사가 최근 상용화 기술을 개발해 직접 제품 생산에 나서면서 "연구용역을 처리할 인력이 없다" 고 한 것.

대기업들은 특히 자사의 연구진이 벤처기업 등으로 빠져 나가며 연구 일손이 달리는 현상도 겪고 있다.

대기업 출신인 B회사 L(35)개발실장은 "내가 다니던 S전자의 연구원 동기 20여명 중 절반이 회사를 떠났다" 며 "대기업들이 연구인력 부족 사태로 기술 개발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고 이로 인해 벤처기업들에 SOS를 보내고 있다" 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 대기업들은 해외연구인력 유치단을 파견하는가 하면 연구 인력을 유치하는 임직원들에게 포상금을 주는 등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 유망 벤처기업은 상한가〓대기업마다 e-비즈니스에 나서면서 유망 인터넷 기업과의 제휴에도 적극적이다.

국내 최대 경매 사이트를 운영중인 ㈜옥션은 최근 아시아나항공.LG홈쇼핑.에스원 등과 잇따라 제휴를 했는데 이들 기업은 모두 먼저 옥션에 제의한 케이스다.

옥션은 컴퓨터 통신업체인 하이텔, 헤드헌팅 업체인 테라휴먼파워와도 제휴하는 등 최근 한달 동안 15건의 제휴 실적을 올렸다.

야후코리아.다음커뮤니케이션 등 포탈사이트업체를 찾는 대기업 임직원의 발길도 잦아졌다.

◇ 빛 못 본 제휴〓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한국정보공학은 지난해 7월 시스템 통합업체인 대기업 계열 텔레콤 회사와 마케팅 제휴를 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시스템 통합과 관련한 수주량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이 회사는 제휴 관계를 지속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이 회사 송영섭 영업부장은 "기대보다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 사실" 이라고 말했다.

한 벤처기업의 사장은 "대기업들이 주가를 끌어 올리려는 목적으로 벤처기업과의 제휴를 시도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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