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흑도 큰일 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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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본선 32강전>
○·이창호 9단 ●·쑨리 5단

제8보(75~84)=‘잡으러 간다’는 말 속엔 둘 중 하나의 ‘파탄’이 숨겨져 있다. 쉽게 말해 누군가 하나는 망하는 것이다. 조심성을 타고난 이창호 9단이 그런 살(殺)의 바둑을 싫어하는 것은 지극히 생리적인 현상일 것이다. 한데 이창호 9단이 전보에서 둔 백△ 두 수가 살기를 짙게 품어 내고 있다. 뭉게뭉게 퍼져 나온 살기가 대국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흑을 쥔 쑨리가 먼저 타협을 거부한 건 사실이지만 놀라운 일이다.

 75를 하나 선수하고 77로 퐁당 뛰어나온다. 많이 유리한데도 거침없이 생사를 건 쑨리 5단. 그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이 방법이 승부를 빨리 끝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한데 모니터 속에서 이창호 9단이 78로 끼우고 있다. 곤마는 건들수록 강해지기에 보통은 잘 안 두는 수. 하지만 이상하다. 82로 뚝 끊기고 보니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박영훈 9단이 A 자리를 지목하며 “이곳이 선수로 듣지 않는데요. 흑도 큰일 난 것 같아요”라고 한다.

 77로 ‘참고도’ 흑1로 그냥 뻗는 수가 아주 중요하다는 게 뒤늦게 발견됐다. 백은 2로 씌우겠지만 이 그림은 무엇보다 흑3이 선수다. 그 다음 13까지 한 집을 내면 B와 C가 맞보기 형태라서 도저히 잡기 힘들다는 것.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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