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피해자들, 국내서 日기업에 소송제기

중앙일보

입력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국내법원에 일본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하는 전후 배상소송이 가해국인 일본이 아닌 피해국에서 제기되기는 한국에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미국에 이어 두번째다.

28일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따르면 `한국원폭 피해 미쓰비시징용자 동지회' 소속 박창환(77.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씨 등 회원 6명은 다음달 1일 미쓰비시 중공업㈜ 대표 마쓰다 노부유키씨와 한국연락사무소 대표 코사사 아츠시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와 미지급 임금지불 소송을 부산지법에 제기한다.

이 소송은 일본 히로시마 법원에 이미 항소심 계류 중이며 지난해 10월 1심 패소후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소송을 제기해 보자는 일본 변호사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희생자 유족회와 변호인단은 부산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한국연락사무소를 찾아내 해당지역 법원인 부산지법에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것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태평양전쟁 말기 미쓰비시측이 일본인들에게는 비상 식량과 피난처를 제공하는 등 구호조처를 취했지만 한국인 징용자들에게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방치, 사망의 위기에 노출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당시 국제관습법상 금지된 노예제를 위반한 국제법적 책임과 일본현지에서 당한 한국인 피폭자들을 그대로 방치한 국내법적 책임, 임금의 일부를 지불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 "원고 1인당 1억원씩의 위자료와 5만-9만엔의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유족회와 피해자들은 이 소송을 계기로 지난해 4월과 12월, 지난 2월 각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등지 법원에 제소한 국제사회 피해자들과 연대해 배상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또 인터넷을 이용한 홍보와 미쓰비시의 국내영업 저지운동, 항의 메시지 보내기, 국제 인권단체의 동참요청 등 조직적인 운동을 펴 나가기로 했다.

민변 최봉태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피해국에서 제기된 것이 큰 의미를 지니며 단순한 민사소송이 아니라 전쟁 범죄와 연계된 만큼 향후 재판과정에서도 재판부의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유족회 김은식 사무국장도 "독일 기업의 경우 전후 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피해국인 국내에서 제기된 이번 소송은 향후 전후 배상문제 소송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박창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