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린 백’으로 돌아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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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경제부문 기자

‘린 포워드(Lean Forward)’에서 다시 ‘린 백(Lean back)으로….’

 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국제가전전시회(IFA 2011)에 참가한 국내 가전업체들의 움직임을 요약한 말이다. ‘린 백’은 소파에 길게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쉬운 가전 제품을, ‘린 포워드’는 그 반대의 경우를 뜻한다.

 이번 IFA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한 것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현지에선 “삼성과 LG가 없으면 행사가 치러지지 않을 것”이란 말도 나왔다. 국내 업체들의 위상을 새삼 실감했다. 올핸 두 회사 모두 ‘보다 더 쉬워진 스마트 제품’을 강조했다. 리모컨 하나로 조작 가능한 스마트 TV나, 더 쓰기 쉽게 만든 모바일 제품들이 그랬다.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애플 아이폰의 등장이 국내외 가전업체에 준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노키아나 에릭슨처럼 잘나가던 회사들조차 만신창이가 됐다. 다른 가전 회사들은 뒤늦게 스마트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간단히 얘기하면 휴대전화에 인터넷을 얹은 것뿐인 아이폰에 그 정도로 당했으니 각자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다른 회사들로선 억울했을 것이다. 속속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쏟아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소비자 편의는 잊혀졌다. 신기술을 적용했다는 이유로 제품 설명서는 점점 길어졌고, 소비자들은 어려운 제품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올해 IFA 출품작들은 이에 대한 반성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적인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 앱의 개수가 많다거나, 스마트TV의 콘텐트가 풍성하다는 것 역시 결국 제조회사가 “우리 제품은 이래서 좋다”고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가장 기본은 결국 사용자 편의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기기를 구입하는 데 지갑을 여는 소비자는 드물다.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스푸트니크)을 쏘아올린 기술력을 가진 러시아지만, 현재 국제 경쟁력을 갖춘 가전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남보다 앞선 기술은 여전히 제조업체 경쟁력의 핵심이다. 그렇다 해도 발달된 기술이 반드시 시장에서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3억9000만여 대의 누적 판매량을 자랑하는 소니의 워크맨도 ‘해외 출장 중 음악을 들을 만한 기기를 만들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베를린에서=이수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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