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대수술] 투신사 불신 뿌리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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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부실 문제는 1989년 '12.12 대책' 으로부터 시작됐다. 89년 4월 종합주가지수 1, 007.77을 정점으로 증시는 하락국면에 들어서면서 12월 들어서는 연속 9일 동안 주가가 폭락했다.

정부는 12월 12일 '증시안정화 대책' 을 발표했다. 투신사들에게 증시가 안정될 때까지 주식을 무제한 사들이라는 지시였다.

당시 이규성 재무부장관은 투신사가 주식을 살 수 있도록 은행이 돈을 대주게 했고, 은행의 부족 자금은 한국은행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특별 조치를 내렸다.

한국.대한.국민 등 3대 투신은 대책발표 후 불과 2주 동안 2조7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는데, 이것이 두고두고 화근이 됐다. 투신사들은 이후 주가가 하락하고 은행에서 빌린 돈에 대한 이자(연12%)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상환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정부는 90년 5월 은행들이 투신사에 빌려준 돈을 투신사가 보유한 수익증권.주식 등을 사주는 방식으로 상계 처리했고 일부는 출자전환도 해주었다. 91년에는 증권금융을 통해 국고 여유자금 2조2천억원을 지원해 은행 빚을 갚도록 하기도 했다.

투신사들은 그러나 주가하락과 환매가 겹치면서 자력으로는 빚을 갚고 정상경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92년 5월 당시 이용만 재무부 장관과 조순 한국은행 총재는 3대 투신에 2조9천억원을 연 3% 금리로 1년간 빌려주는 '한은특융' 도 실시했다.

이 특융자금을 갚기 위해 증권금융에서 '연계콜' 이라는 방식으로 돈을 빌리게 됐고, 이것이 외환위기가 터질 당시 투신권 전체에서 9조5천억원으로 늘어났다.

물론 이 과정에서 투신사의 책임도 있다. 94년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섰을 당시 정부는 과열된 증시를 진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친 증시안정대책을 발표하고 투신사에 주식을 처분해 빚을 정리할 것을 권했지만 투신사가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부실정리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정부는 이후에도 투신부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98년 2월과 8월 외환위기로 부실화한 신세기.한남투신을 한국.현대투신에 넘기면서 곧바로 공적자금 투입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시행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투가 인수한 신세기투신은 98년 2월 인수 당시 수탁고 2조8천억원이었는데 고객 원리금을 돌려주기 위해 1조 6천억원을 쏟아부었고 이 때문에 유가증권 처분손실 등 총 7천1백억원의 부실이 추가로 생겼다. 한남투신을 인수한 현대투신은 98년 9월 인수 당시 6천5백억원의 부실을 떠안았다.

문제는 당시 부실덩어리였던 신세기.한남투신을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기존 투신사들에 인수시킨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98년 4월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 규모를 논의할 때 정부 일각에서는 투신에도 공적자금을 투입, 클린화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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