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실대학 구조조정 용두사미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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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부가 부실대학 구조조정을 위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어제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재정지원 제한 대학 평가’ 결과 하위 15%인 43개 대학을 선정했다. 이들 대학엔 내년 정부의 각종 재정 지원이 제한된다. 이 가운데 부실 정도가 심한 17개 대학은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으로도 선정됐다. 사실상 처음으로 구조조정 후보 대학들을 공개하고 돈줄을 끊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고강도의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선정된 43개 대학은 지난해 1300억원 규모의 재정지원을 받았으나 내년엔 한 푼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학자금 대출 혜택도 줄어들고, 신입생의 경우 현재 정부가 마련 중인 등록금 부담 완화 예산도 지원받지 못한다. 이런 대학엔 신입생 지원이 줄어들 게 뻔하다. 대학 스스로 학과 통폐합, 정원 감축, 학교재단의 재정 투입 확대 등 뼈를 깎는 자구(自救)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고사(枯死)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 대학이 자구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연명에만 혈안이 될 경우 대학 구조조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부는 연내에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을 중심으로 경영부실대학을 선정하고 경영컨설팅을 실시해 구조조정을 유도할 예정이다. 물론 스스로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대학이 건강해지도록 이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영컨설팅에도 불구하고 자구 노력 의지나 성과가 없는 대학은 폐쇄 조치 등 퇴출도 불사해야 한다. 그래야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대학 구조조정 작업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지 않게 된다.

 대학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부실 대학이 스스로 문 닫을 수 있도록 퇴출 경로를 열어줘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사립학교법’과 ‘사립대학 구조 개선 촉진·지원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문 닫는 대학 설립자에게 잔여 재산 일부를 돌려주는 등의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번만큼은 대학 구조조정이 흐지부지돼선 안 된다. 부실 대학을 그냥 두고선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