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큐브 방향지시등 논란과 글로벌 스탠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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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강병철
경제부문 기자

국내 자동차 안전기준이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을까. 최근 수입된 닛산 큐브의 방향지시등 간격 때문에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은 큐브의 전면부 방향지시등 간격이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44조 4항에 맞지 않아 생겼다. 이 조항은 ‘차량 전면부의 방향지시등은 차체 너비(전폭)의 50% 이상의 간격을 두고 설치할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차가 좌우 어느 방향으로 갈지 확연히 나타내기 위해서다. 큐브의 전폭은 1695㎜. 국내 기준에 따르면 간격은 847.5㎜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820㎜으로 기준에 못 미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차량은 원칙적으로 국내 도로를 달릴 수 없다. 그러나 한국닛산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근거를 든 것은 동일 규칙 내 다른 조항인 114조 7항. ‘외국의 기준에 의한 시험성적서를 이 규칙의 안전기준에 의한 시험성적서로 갈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 규정’이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큐브의 방향지시등은 미국의 자동차 안전기준을 준수했기 때문에 국내 기준에도 적합하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안전기준과 글로벌 스탠더드 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 사례로 자동차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전조등이 비추는 곳이 바뀌는 ‘조명 가변형 전조등 시스템’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외국에서 인증받아 고급 차종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에 수입되는 차량은 2008년 이후에나 장착할 수 있었다. 당초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38조 3항은 ‘전조등의 비추는 방향은 진행 방향과 같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수입차업계는 오랜 기간 해당 조항의 개정을 요구했고, 2008년 ‘전조등의 비추는 방향은 자동차의 진행 방향 또는 진행하려는 방향과 같아야 한다’고 개정됐다.

 올 6월엔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가 국내 자동차 안전기준 중 승객 좌석의 규격 등 조항이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유럽과 일본에서 차 안전기준과 관련한 민원을 봇물 터진 듯 제기하고 있다. 과연 국제기준에 따르는 게 적합한지 실익을 좀 더 따져보고 불필요한 통상마찰을 부르는 괜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강병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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